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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패션>충무로에도 '할리우드 감기' 들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6면

한국의 여름 극장가는 할리우드의 대리전장이 된다.
96년 여름만 해도 한국 관객들은 아널드 슈워제너거의 무지막지한 살육행각(이레이저)과 하늘을 시커멓게 뒤덮은 외계인의 괴비행물체(인디펜던스 데이),고속전철 위를 거의 날아다니는 톰 크루즈(미션 임파서블)와 인간의 마을을 초토화하는 회오리바람(트위스터),그리고 액션스타로 탈바꿈한.알콜중독자'니컬러스 케이지(더 록)를 구경하기 위해 기꺼이 매표소 앞에 줄을 섰다.
이 다섯 영화에 몰린 관객은 모두 4백여만명(서울 개봉관 기준)으로 추산된다.한국영화 흥행 1~5위를 합친 관객(2백여만명)의 두배에 이른다.그나마 지난해는.투캅스2'(70만명)와.
은행나무침대'(66만명)라는 흔치 않은 흥행작이 있었기에 격차를 그 정도에 머물게 할 수 있었다.
올해 개봉될 블록버스터의 숫자와 목록을 보면.한국영화 비상'이라는 표현이 나올 만하다.첨단 조미료를 듬뿍 친 할리우드 대작들이 대거 몰려오면 한국영화뿐만 아니라 작품성 있는 외국영화들이 관객동원은 물론 개봉기회조차 얻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96년 최고의 흥행작.인디펜던스 데이'는 한때 서울의 60여 개봉관 가운데 17곳을 장악한 적도 있다.미국의 배급업자들조차“영화시장이 수용하기에는 너무 많은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불평할 정도다.
메이저 스튜디오들은.공룡들'간의 정면 충돌을 피하기 위해 올해에는 보통 7월부터 시작되던 여름용 영화 개봉시기를 5월초로당기고,11월말께인 크리스마스용 개봉시기를 11월초로 앞당길 것으로 보인다.미국내 배급 스케줄이 이렇게 잡히 면 세계에서 할리우드영화가 가장 빨리 개봉되는 한국도 비슷한 일정을 따를 수밖에 없다.
결국 한국영화와 예술영화가 피해야 하는 시기가 그만큼 늘어난다는 얘기다.여하튼 할리우드 공룡들의 난투극이 어느때보다 치열해진다는 것은 일부 수입업자.극장주를 제외한 한국영화 제작 종사자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 아니다.

<허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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