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목소리 때문에 ‘미드’ 본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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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콜비, 차를 찾았어! 준비됐나?”

“잠깐만요. 좀더 젊은 음색으로 가볍게 다시 한번 가주세요.”

18일 오후 서울 목동 SBS 스튜디오. 성우 예닐곱 명이 미국 드라마(이하 미드) ‘넘버스’ 시즌2 녹음에 분주하다. ‘넘버스’는 FBI 수사관인 형 돈 엡스가 천재 수학교수 동생 찰리의 도움을 받아 과학수사를 벌이는 내용이다. ‘CSI’‘크리미널 마인즈’등 수사물을 줄줄이 히트시킨 미국 CBS가 제작했다. 2005년 전미 시청률 10위권 안에 든 화제작이다.

SBS에서 방영한 미드는 현재 ‘넘버스’를 포함해 ‘프리즌 브레이크’‘히어로즈’‘하우스’등 모두 4개. 금요일 심야시간대지만 평균 4%대의 꾸준한 시청률을 올리는 미드는 요즘 같은 광고불황에도 흑자를 내는 효자들이다.

뜨는 미드에는 어김없이 뜨는 목소리가 있다. 영어에 친숙한 젊은 시청자들이 자막판을 선호하던 때도 있었지만 “그 성우 때문에 본다”는 시청자들도 최근 부쩍 늘어났다. 인터넷 게시판에 “○○○ 더빙판 구할 수 없나요”라는 문의도 심심찮게 올라올 정도다. ‘넘버스’에서 돈과 찰리 형제의 목소리 연기를 맡은 신성호(53)·임채헌(35)씨도 그렇게 손꼽히는 성우다.

‘제2의 배한성’으로 불리는 신씨는 외화 더빙에서 스티븐 시걸, 장 클로드 반담, 주윤발 등의 목소리를 전담하다시피 한 베테랑 성우다. ‘히어로즈’에서 ‘컴퍼니’의 일원 톰슨 역을 맡기도 했다. 울림이 깊어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목소리가 ‘딱 주인공’이라는 평이다.

그보다 한 세대 밑인 임씨는 ‘히어로즈’에서는 일본인 히로와 흑인 디엘을, ‘위기의 주부들’에서는 완벽주부 브리 밴 드 캠프의 말썽쟁이 아들 앤드류와 캐서린의 의사 남편 애덤을 맡고 있다. 주요 배역 두 가지를 동시에 연기하는 건 드문 일. 그만큼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는 증거다.

“20, 30대 시청자들을 의식해 목소리 연기가 자연스러워졌기 때문인 것 같아요. 개그 프로에서 꼬집기도 했지만, 요즘은 성우들도 목소리에서 기름기를 의식적으로 배제하려고 애쓰죠. 연출자도 녹음 들어가기 전에 성우들한테 ‘멋진 목소리, 예쁜 목소리 다 버리세요’라고 주문합니다.”

입 모양 맞추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건 배역의 성격을 파악하는 일이다. “돈은 지적인 수사관이죠. 지적인 사람의 어조는 조용하면서 큰 변화가 없어요. 전반적으로 차분하게 가야 돼요. 제가 50대라 돈과 나이 차가 나니까 음색을 젊게 유지하는 것도 중요합니다.”(신성호)

“찰리는 수학적 능력은 출중하지만 연애나 가족관계에서 서투르죠. 그런 대조적인 면이 귀여운 인물이예요. 수학 공식이나 과학 지식을 길게 설명하는 대사가 많아 아차, 하면 말이 꼬이기 십상이라 항상 긴장합니다.”(임채헌)

이들은 불법 다운로드로 미드를 접하는 일부 네티즌들에 대해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저희는 정확한 번역을 토대로 정제된 우리말을 전달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연기합니다. 욕설을 여과 없이 번역하거나 인터넷 유행어를 생각 없이 갖다 쓴 자막을 보면 참 안타깝습니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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