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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완 펑크로 상업주의에 맞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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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김창완 밴드의 멤버들. 왼쪽부터 최원식(베이스), 이상훈(키보드), 김창완(보컬·기타), 이민우(드럼), 하세가와 요헤이(기타).


 가수 겸 연기자 김창완(54)이 25일 새 앨범을 낸다. 1997년 발매된 ‘산울림-13집’ 이후 11년 만이다. 자신이 최근 결성한 ‘김창완 밴드’의 첫 작품이다. 그룹 ‘산울림’의 김창완도, 솔로 김창완도 아닌, 새로운 밴드의 일원으로서 새로운 음악 인생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와 의기투합한 ‘젊은 피’는 하세가와 요헤이(기타), 이상훈(키보드), 최원식(베이스), 이민우(드럼)등 네 명이다.

앨범 타이틀 ‘더 해피스트(THE HAPPIEST)’는 새로운 음악적 둥지를 튼 자신의 행복감을 표현한 말이다.

앨범 막바지 작업에 한창인 그를 17일 서울 망원동의 녹음실에서 만났다. 그는 “기존 가치에 반발하고 파괴하려는 펑크(PUNK)음악에 대한 갈증이 컸다”며 말문을 뗐다.

따지고 보면 그가 1970년대 중반 두 동생(창훈·창익)과 함께 시작했던 산울림도 기존 가요에 대한 반발에서 시작한 것이다. 그가 이번에 타깃으로 삼은 대상은 예술계에 판치는 상업성이다. 그는 앨범 전체를 펑크 색깔로 가져간 것은 음악을 시작한 이래 처음이라고 말했다.

“음악이 홀대받는 것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자, 상업주의에 대한 반발입니다. 그래서 자극적인 장르를 택한 거죠. 감동보다는 재주를 앞세우며, 주판알을 튕기는 음악계에 일침을 놓고 싶어요. 우리는 상업성에 함몰되지 않으며, 음악 자체로 행복한 밴드 음악을 할 겁니다.”

사운드도 디지털 시대에 역행하듯 거칠고, 원초적인 아날로그 록사운드를 표방했다. 악기끼리 부딪히는 소리, 멤버들의 숨소리와 웃음소리도 여과 없이 녹아있다.

여섯 곡이 수록된 앨범은 모던한 록 사운드의 연주곡 ‘걸 워킹(Girl Walking)’으로 시작해 ‘우두두다다(떨리는 심장소리를 표현)’라는 밝은 곡으로 문을 닫는다. ‘모자와 스파게티’ ‘제~발 제~발’은 사소한 일상의 단면을 관조적이며 리얼리티 충만하게 표현한 노래다.

영어 가사로 된 포크송 ‘포크 리프트(FOLKLIFT·지게차)’는 1월 캐나다에서 지게차 사고로 목숨을 잃은 막내동생 창익 씨를 위한 조혼가다. 서정적이고 따뜻한 이 노래는 그에게 새로운 음악에 대한 용기를 불어 넣은 계기가 됐다.

“2년 전 산울림 30주년 공연을 마친 뒤 앞으로 어떤 음악을 할 지, 내게 음악은 무엇인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20여곡의 신곡도 발표하지 못했죠. 창익이를 잃고 실의에 빠진 상태에서 4월쯤 ‘포크 리프트’를 만들었는데, 그게 큰 위로가 되더군요. 그 때 노래가 갖는 위로의 힘을 깨달았죠. 이후 밴드 결성과 음반 작업에 가속도가 붙었어요. 우리 음악이 사람들에게 큰 위로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는 신보와 함께 산울림 전집 앨범(정규 앨범 13장+동요 앨범 4장)도 함께 낸다. 창익씨의 죽음 직후 ‘더 이상 산울림은 없다’고 선언했던 그가 산울림의 음악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낸 것이다. 그는 이번 전집 앨범이 산울림을 기억하는 세대나 산울림을 모르는 젊은이들 모두에게 ‘우리에게도 30년 이상 활동한 산울림의 음악이라는 위대한 유산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에릭 클랩튼이 무대에서 더 이상 ‘티어스 인 헤븐(Tears in Heaven)’을 부르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랄까요. 창익이 없는 산울림은 의미가 없어요. 비극적 사고만 없었다면, 산울림은 더 활발히 활동할 수 있었을 텐데…. 그 아쉬움이 나를 다시 노래하게 했는지도 몰라요. 산울림 음악의 진짜 매력은 약간 비틀어진 시각과 관조적 태도로 일상을 노래하며, 환타지를 추구했다는 것이죠. 산울림 덕분에 우리 삼형제는 결속할 수 있었고, 행복했습니다.”

그는 “아직도 스쳐가는 사람이 창익이처럼 보일 때가 있다. 아직도 동생의 환청이 들린다”며 눈가에 이슬을 보였다.

“김창완 밴드에서 산울림의 향기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가장 듣고 싶은 평가는 ‘산울림의 영광을 등에 업고, 새로운 출발을 했다’는 겁니다.”

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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