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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영화 "동사서독""연어알""매직 에로티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2면

아무도 없는 혼자만의 공간에서 비디오에 몰입하고 있는 영화광들은 영화속의 세계와 현실을 혼동하게 된다.영화속으로의 여행은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시간이다.
감동적인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고 도저히 불가능한 액션이 눈앞에 나타나면 열광하고,사실 말도 안되는 장면인데도 포복절도하는관객들은 허구의 세계에 잠시동안 모든 현실을 귀속시키는 것이라할 수 있다.
이러한.비현실의 현실'과 함께 남녀의 성적 구분마저 헷갈리게하는 작품들이 속속 선보이고 있다.
현실과 허구의 경계,남녀 성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드는 것을 두고 포스트모더니즘 현상의 대표적 예라고 한다.현실과 비현실,남과 여의 확실한 구분을 근본부터 의심하고,해체시키려 한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동방불패(東方不敗)'에서 날렵한 무인의 모습을 보여준 린칭샤(林靑霞)의 양성적(兩性的) 이미지를 왕자웨이(王家衛)감독은.동사서독(東邪西毒)'에서 극대화시켜 놓았다.그는 바람같은 주인공 검객을 죽도록 사모하는 여자이면서 동시에 목 숨 걸고 질투하는 그의 쌍둥이 오빠로서 두겹의 존재다.그가 왜 그런 양성의 존재를 갖게 됐고 한 몸안에 모순된 두 존재가 양립됐는가를되씹어보는 것이 이 영화의 크나 큰 재미다.
화제작.연어알'의 주인공 K D 랭은 그가 여자라는 것을 감추고 에스키모 청년의 모습으로 등장한다.여자임에도 남자처럼 살아온 연유는 작은 에스키모 마을에 숨겨있는 그의 아버지의 전력때문이라는 것을 마지막 장면까지 설명해주지 않는 다.
.007 골든아이'에 본드걸로 전격 캐스팅돼 유명해진 이자벨라 스코룹코는 스웨덴 영화.매직 에로티카(St.Peter's Tears)'에서 남장을 한 중세의 마술사로 연기한다.교회와 정치권력의 억압에 눌려있는 민중들에게 사이비 약을 팔면서 기존체제를 조롱하는 마술사는 변장을 풀고 현실로 돌아오면 오히려 권력자(시장)의 아들과 사랑을 나누게 된다.
왜 지금까지 당연시하고 있었던 남녀 구분의 틀을 무너뜨리려고하는가.감독들은 한마디로 획일적으로 규정지어진 불만스런 현실에서 뛰쳐나오고 싶은 전복적인 사상을 퍼뜨리려는 것이다.
기구한 사연들과 성적 구분의 모호성을 증폭시키는 것은 이 영화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비현실적 배경 때문에 더욱 고조된다. 안개에 싸인 중국 대륙의 첩첩산중(동사서독),알래스카 에스키모의 아득한 백설 세계(연어알),교회와 권력의 모순으로 가득찬 중세의 시골 마을(매직 에로티카)등 낯선 환경들에서 남녀의 경계를 수시로 뛰어넘는 것이 어울리게 된다.
특히 성적 구분의 혼란이 문제가 되는 순간은 항상 두 주인공이 사랑을 느끼게 될 때다.사람으로서 상대방을 좋아하지만 서로생각하는 상대들은 현실의 그(그녀)가 아니고 또한 동성애가 되기 때문에 제도적인 벽에 부닥치게 된다.사랑은 어떠한 한계도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지만 성의 구분 또는제도의 벽을 거스르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채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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