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사과'후의 對北정책

한영사전에.사과'라는 낱말을 찾아보면 .apology'라고 나와 있다.그런데 영한사전에 apology를 찾아보면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유감을 표시한다는 뜻과 그 정반대로 상대방에게해를 끼칠 의도가 없었음을 설명하고 해명 또는 변호한다는 뜻으로 돼 있다.
잠수함사건에 대한 북한의.사과'는 이중 둘째 의미에 가깝다고보는 편이 정확할 것같다.북한이 진심으로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앞으론 그런 행동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기 때문에.사과'했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정부가 북한의 사과 아닌 사과를 사과로 인정하기로한 것은 잘한 일이다.북한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국제관계,그리고 개인관계에 있어서도 진심으로 사과하는 예는 극히 드물다.만일 북한이 진심으로 사과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면 우리는 무한정 기다려야 했을지도 모른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우리는 북한이 사과했다는 사실과는 상관없이 앞으로 계속 북한문제에 당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북한은 식량문제 등을 포함한 자신의 필요 때문에 잠수함침투사건에 대해 그나마 사과성명을 냈다고 볼 수 있다.잠수함 침투사건이 발생한 직후에.백배,천배'보복하겠다고 떠들던 그들이 그 정도라도.사과'하는 제스처를 하기로 결정한 것을 보면 북한의 내부사정이 얼마나 절박한 것인가를 짐작할 수 있다.그런데 북한 내부사정이 절박하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에게 도 심각한 도전이 제기된다는 것을 뜻한다.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전술적 차원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선 정부 밖에있는 사람은 뭐라고 말하기 어렵다.구체적인 전술정보가 없기 때문이다.따라서 정부는 전술적 차원의 대응에 있어 주도적 역할을독점하는 한편 그 결과에 대해서는 국민의 심판을 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전략적 차원에서는 다음 세가지 필요성을 명심해야 한다.
첫째는 대북(對北)정책의 목표가 뚜렷해야 한다는 점이다.물론우리에게는 분명한 궁극적 목표가 있다.평화통일이 그것이다.그러나 정책목표는 단순한 희망이 아니라 실제로 실현 가능한 행동목표다.그러니까 현상황에서 우리가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는 북한과의 협상과 합의에 의한 평화공존체제인가,북한체제의 조기붕괴인가,아니면 북한체제의 변화인가,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목표들의 우선순위는 어떤 것인가.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우리는 냉철하고 명백하게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둘째로 현실을 직시할 수 있어야 한다.강한 의지와 목표를 향한 정열도 필요하지만 객관적 현실을 무시한 목표의식은 자원의 낭비와 정책의 방황,그리고 좌절만을 가져온다.특히 우리는 국제적 현실을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한반도의 현상타파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한 현시점에서 우리에게가장 중요한 현실은 주변국가들이 한국 주도아래 통일되는 상황에대해 깊은 우려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북한의 핵무기 문제에 대한 우려는 통일한국이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는 문제와 직결돼 있고,북한의 생화학무기 개발 문제도 북한이 개발한 생화학무기 생산기술을 통일한국이 보유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우리가 이러한 상황을 직시한다면 핵무기 등을 포함한 통일한국의안보개념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투명하게 정리함으로써 주변국가들의 한국에 대한 불신을 극복해야 한다.
대북 정책의 목표,한국이 당면한 객관적 현실,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 수행을 위한 제도정비다.지금의제도로 예기치 않은 위기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북한 및 주변국가들에 대한 정보는 정보를 수집한 기관이 직접 최고결정자에게 보고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아니면 권위 있는전문가들의 분석과 평가를 거쳐 보고돼야 하는가,부처간 역할을 조정하는 상설기구는 필요 없는가.
하루 속히 효과적인 대북정책을 위한 제도정비가 필요하다.더이상 대통령이 정보분석관.정부대변인.북한전문가,나아가서는 대북협상자역할까지 해야 하는 제도는 개선돼야 한다.
우리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북한문제는 우리에게 가장 중대한 도전으로 다가오고 있다.그리고 우리가 이 도전에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따라 우리 민족의 운명은 결정될 것이다.
金瓊元 <사회과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