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강찬수 기자의 환경 이야기] 수돗물 병으로 팔면 불신 풀릴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8면

 11일 국무회의에서 수도법 개정안이 의결됐습니다. 개정안에는 수도사업자인 지방자치단체와 한국수자원공사가 수돗물을 페트병 같은 용기에 담아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물론 법안이 국회를 통과해야 하지만, 수퍼마켓 냉장고에서 생수병과 나란히 진열돼 있는 수돗물을 볼 날도 멀지 않았습니다.

페트병에 담긴 수돗물이 판매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요. 일단 깨끗한 물을 값싸게 마실 수 있겠죠. 수돗물 수질이 생수보다 굳이 못할 것도 없으니까요. 그래서 생수가 안 팔리는 일도 벌어질 것 같습니다.

생수보다 싸다고 하지만 500mL짜리 한 병에 150~200원은 할 것 같습니다. 그 속에 담긴 수돗물 값은 1원어치에도 안 되지만 빈 페트병 자체 가격이 100원 이상이기 때문이죠. 여기에다 시설 투자비·물류비·판매 마진까지 포함해야 합니다.

여러 지자체가 제각기 생산한 수돗물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상황도 예상됩니다. 수자원공사의 ‘케이워터(K-water)’와 서울시의 ‘아리수’, 인천시의 ‘미추홀 참물’, 경기도 남양주시의 ‘다산수’가 수도권에서 격돌할 수도 있습니다.

각 지자체는 활성탄 처리 같은 고도 정수 처리 설비를, 소독약 냄새를 줄이기 위해 색다른 소독 방법을 앞다퉈 도입하겠죠. 어쩌면 과열 경쟁을 예방하기 위해 과거 소주처럼, 아니면 쓰레기 종량제 봉투처럼 해당 지역에서만 판매하도록 제한하는 상황도 벌어질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문제는 페트병 수돗물을 판매해 수돗물 불신을 없애겠다는 환경부·지자체의 희망이 이뤄질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일부에서는 정수장에서 바로 만드는 페트병 수돗물이 낡은 수도관을 거쳐 나오는 일반 가정의 수돗물과 다르지 않으냐는 볼멘 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수돗물은 못 먹는 물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것이라는 것입니다.

페트병 쓰레기 문제도 있습니다. 병을 만들고, 수돗물을 운반하고, 보관을 위해 냉장고를 가동하는 과정에서 에너지를 소비하기 때문에 지구온난화를 일으킨다는 비난도 받을 수 있습니다. 예산만 낭비하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환경부나 지자체가 미리 이것저것 잘 따져봐야 할 것 같습니다.

강찬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