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싸움판의 牛황제 '곰돌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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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경북 청도 홍두깨산자락 마을에 사는 천하장사 곰돌이(5)는.소(牛)의 해'를 맞아 요즘 몸불리기에 한창이다.
황소 곰돌이는 싸움소로 나선지 3년만인 지난해 11월 합천에서 열린 전국대회에서 모래판을 평정했다.슬슬 소싸움 인기가 높아지는데다 올해는 해가 해인만큼 많은 팬들이 모래판 주위로 몰려들 것으로 예상된다.그들 앞에서 늠름하게 왕좌를 지키려면 몸을 불려야만 한다.
사실 곰돌이는 일찍이 소싸움판의 유망주로 떠올랐다.천하장사가되기 이전,씨름판의 한라장사급에 해당하는 을(乙)종에 소속해 있으면서 전국 모래판을 거의 휩쓸었다.그 바람에.상대가 없으니까 백두장사급인 갑(甲)종으로 옮겨가야 한다'는 주최측의 여론에 밀려 지난 11월 합천 대회에서는 백두장사급에 출전했다.
그런데 몸불리기가 덜 끝나 7백30㎏이라는 경량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덥석 우승을 해버린 것이다.7백20㎏까지 을종이고 그이상은 갑종인데,갑종 선수들은 거의 9백㎏ 전후의 헤비급들이다. “합천에서 우승한 것은 참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매번 20분내로 결판을 내버릴 수 있었기에 힘이 덜 빠졌던 것이지요.그런데 강적을 만나면 1시간 넘게 버티기를 하는 일도 있기에지구력을 길러 놓아야합니다.지구력은 일단 몸무게가 있어야 되거든요.”곰돌이의 매니저인 주인 도종문씨의 얘기다.
소싸움판 강자로서의 명예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은 몸불리기로끝나지 않는다.몸이 조금 불면 내년 3월 청도에서의 전국대회를앞두고 산악훈련을 시작해야 한다.
처음에는 산보삼아 산을 오르다가 나무 둥치를 만나면 뜰매질(머리로 부딪치는 것)이나 몇번 하면 된다.그러다가 뒷다리에 힘이 좀 붙으면 8트럭의 타이어를 메고 등산해야 한다.
그렇게 힘을 쓰려면 잘 먹어야 한다.보통 소들은 볏단에 사료를 대강 버무린 부실한 끼니로 때우고 말지만 곰돌이의 식단은 화려하고 다양하다.
기본식단은 보리쌀.콩.밀등을 볏단과 함께 끓인 따뜻한 여물.
가끔 들깨가 여물에 들어가기도 하고,특식으로 사람들이 먹는 보약과 똑같은 십전대보탕이나 미꾸라지.뱀도 먹는다.육식은 즐기지않기에 미꾸라지는 주인들이 병에 넣어 목안으로 부어넣고,뱀은 지푸라기에 둘둘 말아 입속에 집어넣는다.
평소에 순하던 곰돌이는 싸움판 근처에만 가면 숨소리가 거칠어진다.싸움판에서 적을 만난 황소는.음메~'하고 울지 않는다.뱃속 깊숙한 곳에서 서서히 울려 퍼져나오는 듯한 소리,.씨이익-킁'하는 소리가 콧김과 함께 콧구멍에서 직선으로 뿜어나와 하얗게 퍼진다.
만만찮아 보이는 낯선 황소의 눈길,모래판 주위에 몰려든 관중들의 함성,.밀어라,밀어'라는 주인의 고함소리,다른 소들이 경기장 주위에 배설해놓은 똥.오줌 냄새까지 후각을 자극하면.싸워이겨야 한다'는 투혼이 본능적으로 온 몸으로 퍼 지면서 근육을긴장시킨다.고래빼기(발로 모래를 후벼파 공중으로 퍼올리는 짓)로 앞다리 근육을 풀면 함성은 더 높아진다.
옛날 소싸움이 민속이었던 시절,소싸움은 힘좋은 황소를 골라 그 씨를 받기 위한 종자개량의 지혜가 있었다.하지만 요즘은 종자개량보다 전국 노름꾼들의 노름판이 서는 바람에 씁쓸하기도 하다.그래도 최근 순수한 구경꾼들이 많이 몰려들어 싸울 때면 더흥이 난다.
.소의 해'를 맞는 지금의 곰돌이는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소싸움판에서 적지않은 팬을 가지고 있는 다크호스로서.소의 야성(野性)'을 인간에게 알리기 위해.

<청도=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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