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중앙문예>시조-심사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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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용호상박(龍虎相搏)의 격전장이 따로 없었다.저마다 이지적 몸짓으로 정련된 칼끝언어를 구사,진검승부(眞劍勝負)를 겨루는 격전장이 바로 신춘문예 마당이라는 사실을 거듭 확인할 수 있었다.올해 신춘.중앙문예'시조부문 응모작은 모두 4백 70여편이었다.이 가운데 우수작 반열에 떠오른 작품은 다음 일곱편이었다.
이재현의.일몰의 바다'와 김정훈의.강위에 서서',그리고 서한기의.식물원'등에는 상큼하고 풋풋한 시적 감수성이 묻어나 있었다.순수 서정의 바탕 위에 인생의 무게를 실은,이른바.세상읽기시학'을 펼친 것들이었다.김가영의.나사처럼'과 김준엽의.線'도앞서 지적한 작품들과 엇비슷한 발상법을 취하면서 사회학적 접근법을 시도하고 있었다.
박정해의.해빙기'와 10편은 당차고 우렁우렁한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었다.편마다 다섯 혹은 여섯 수(首)와 긴 호흡을 유지한.땅끝에서 돌아보다'등 그의 시조는 어느 응모작보다 스케일의웅장함을 연출하고 있었다.그 당차고 우렁우렁한 목소리는 우리 시조가 지향해야 할 덕목 가운데 하나였으며,필요한 피라는 당위성 때문에 눈길을 끌었다.그러나 군데군데 여과장치를 덜 거친 듯한,표현의 생경한 대목이 노출되기도 했다.
마지막.진검승부'를 겨룬 작품은 김준엽의.線'과 김정훈의.강위에 서서'였다.당선 후보에 오른 두 작품을 놓고 심사를 맡은두 사람은 긴 시간 검색작업 끝에.강위에 서서'를 당선작으로 결정하는데 합의를 보았다..노을은 붉은 장작으로 어둠을 지피고/강위에 잉걸들이 모여서 재잘거리며'같은 표현을 이끌어낸 김정훈의 본새가 한 두해 시조 글밭을 일구고 경영해온 솜씨가 아니라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었다.
〈심사위원:김제현.윤금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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