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의 역사] 65. 구름을 타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 일제 때 징용으로 끌려간 사할린의 한국인 광부들.

이만희 감독의 '만추(晩秋)'라는 영화가 은근한 호평을 받은 뒤였을까. 워커힐에서 작업하고 있던 나는 두 여성의 방문을 받았다. 한 분이 '전옥숙'이라는 명함을 주었다. 이름을 알지도 듣지도 못한 분이다. "사할린스크를 아시죠?"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내게 물었다. 일제 땐 사할린스크를 '가라후토'로 불렀다.

"거기에 징용으로 끌려갔다가 아직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있지요? 그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자그마치 4만명이 넘습니다. 전쟁이 끝난 지 20년이 되는데 그들은 오지도 가지도 못하고 거기 묶여 있습니다. 먼 조국의 하늘을 바라보고 언제 돌아갈 수 있느냐, 눈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입니다. 그래도 되는 것입니까?"

아픈 곳을 찔린 기분이었다. 나와 비슷한 나이에 끌려간 그들은 거기 묶여서 옴짝달싹을 못하고 있다. 나는 숙연해져 할 말을 잊었다.

"사할린스크의 4만인 이야기 좀 써주세요. 선생은 '현해탄은 알고 있다'에서 일제 군대 조직을 폭로하지 않았습니까. 사할린스크를 고발할 사람은 바로 선생, 당신이라고 생각돼 찾아왔습니다."

우리 언론도, 일본 언론도 그 문제를 아주 미묘한 숙제로 삼았다. 옛날엔 일본 영토였지만 일본 패망 후 소비에트(옛 소련) 영토가 됐다. 전후(戰後) 일본은 징용 한국인들을 돌려보내고 싶어도 그들이 살고 있는 땅의 주인이 놓아주지 않아 어찌할 수 없던 처지였단 말인가. 그들 중에는 일본 여성과 결혼해 아이까지 낳았으니 문제는 더욱 복잡하게 얽혔다.

그런데 이런 문제를 내게 불쑥 내민 전옥숙이란 누구인가. 나는 '망향(望鄕)'이라는 제목을 생각했다. 고향을 바라본다는 뜻이다. 민족의 비극을 그리는 것이라고 자부심을 가져보기도 했다. 다소 시간이 걸린 것 같았으나 써주었다.

전옥숙 여사의 주장이었던가. 제목은 '사할린스크에 남은 4만인'이라고 했다. 시대의 변천도 변천이었지만 끝내 영화로 만들지 못했다. 이만희 감독이 벼르고 있다는 얘기는 들었다. 그렇게 간단하겠는가. 촬영을 위해 사할린스크로 못갈텐데. 그리고 李감독은 돌아오지 않는 사람이 돼버렸다.

여기서 내가 얻은 소득은 '전옥숙'이라는 지성 냄새가 나는 비범한 여성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그 뒤 그는 일본 언론의 특파원들을 몽땅 데리고 우리집에 드나든 적이 있다. 그리고 시작된 그와의 이야기는 또 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 보통 여성이 아니었으니까. 일본말을 잘 하는 여자였으니까. 미모에 재치가 번뜩이는 레이디였으니까. 곧바로 우리 집사람과 언니.아우하는 사이가 됐으니까. 나와 일본말로 이야기하면 우리 세대의 특이한 감각을 즐길 수 있었으니까. 뒷날 그를 알게 된 방송.연예계 사람들은 강렬한 그의 기질을 엿볼 기회가 있었을테니까. 세상을 꿀꺽 들이마시고도 눈 하나 깜빡 안 할 여성으로 보였으니까. 일본을 어떻게 할 것이냐. 우리 고민은 계속됐다.

한운사 작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