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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손길로…] 10. 나자렛 성가원 이인복 원장(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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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지난 12일 오전 서울 평창동 나자렛 성가원에선 '흔해서 오히려 슬픈' 풍경이 재연됐다. 남편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어린아이와 함께 도망친 한 여성이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도착했다. 이인복(본명 마리아.67) 원장이 이들을 따뜻하게 맞았다.

"낮이나 밤이나 일어나는 일입니다. 새벽 2, 3시에도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래도 이건 견딜 만해요. 다음날 남편들이 어떻게 알고 찾아와 '마누라 내놓으라'며 욕설을 퍼부을 때는 정말 난감하죠."

이원장이 깊은 숨을 들이 마셨다. 서울 가톨릭 사회복지회에 소속된 나자렛 성가원은 남편의 폭력을, 성매매의 굴레를 피해 잠시 몸을 맡겨온 여성들의 '쉼터'다. 이원장은 사회의 가장자리로 떠밀린 이런 여성들과 지난 25년을 함께해 왔다.

"나눔은 덕이 아니라 생명의 의무입니다. 제 좌우명이죠. 저도 선행을 베푸는 게 아니라 빚을 갚는 겁니다."

누구에게 진 빚일까? 이원장이 지난 삶은 시쳇말로 소설 자체였다. 나아가 한국 현대사의 고통을 그대로 압축했다. 부유한 집에서 태어난 그는 한국전쟁 때 납북된 부친이 '월북 인사'로 오해받고, 남은 가족마저 총살의 위협을 느끼자 어머니.여동생들과 함께 모든 것을 버리고 부평의 기지촌으로 숨어들었다. 그곳에는 당국의 감시가 미치지 않을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제 가족을 지켜준 사람들은 기지촌 여성이었습니다. 그들이 저 대신 고통을 짊어졌기에 오늘의 제가 있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 진 큰 빚을 조금 갚을 뿐이죠."

이원장은 지독한 또순이다. 어린 동생을 돌보며 고학으로 숙명여대를 졸업했다. 1978년 모교에서 '한국문학에서 나타난 죽음의식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그때부터 2002년까지 국문과 교수로 재직했다.

"80년부터 소외된 여성을 돌보아 왔습니다. 제가 받은 은혜를 사회에 돌려주자는 뜻이었습니다. 처음엔 제 집에서 시작했는데 2000년 법인으로 전환했습니다."

그는 올 초 33억원을 들여 5층집 성가원 건물을 새로 지었다. 일시불로 받은 퇴직금.연금 전액을 헌납했다. 심지어 사돈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양해를 받아 딸 넷의 혼수비용도 시설 운영에 사용했다. 서울대 교수로 있던 남편의 퇴직금도 고스란히 건축비로 들어갔다. 아직 건축비 절반이 빚으로 남았으나 죽기 전까지 반드시 갚겠다고 했다.

"좋은 시설은 갖췄는데 이젠 여력이 없네요. 당장 이불 50채와 새 컴퓨터 10대라도 기증받았으면 좋겠어요. 쓰던 물건을 주는 사람도 있지만 쓰레기가 되기 십상이거든요."

그의 목표는 이곳 여성들의 자립이다. "열심히 일하며 살겠다"는 의식을 강조한다. 다만 여성들의 상처가 크기에 절대 강요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마음의 안정이 중요하단다.

"연말정산 영수증도 떼 드립니다. 뜻있는 분은 동참하세요. 이들 모두 우리의 어머니요, 누이요, 딸이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나요?" 02-391-3086.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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