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벗어난 전 지구적 문학판 만들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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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유라시아 대륙의 가장 서쪽에 있는 승화된 영혼이 이제야 가장 동쪽의 영혼을 만나러 왔다.”

노르웨이의 시성 울라브 H.하우게(1908~1994)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발간된 시선집 『내게 진실의 전부를 주지 마세요』(실천문학사)에 고은 시인이 쓴 서평이다. 국내에 그의 시가 번역된 건 처음이다. 지난달 30일에는 한국외대 그리스발칸어과에서 주관한 ‘한국 카잔차키스 친구들의 모임’ 창립대회가 열렸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를 재조명하는 자리였다. 북유럽, 동유럽, 아랍권, 남미 등 그간 제대로 소개되지 못한 언어권 문학에 대한 관심이 최근 높아지고 있다. 각국 대사관과 관련 민간단체들이 깃발을 들고 나섰다.

지난달 27일 서울 남산 문학의 집에서 ‘한국-노르웨이 문학의 밤’ 행사가 열렸다. 이 날 행사에 참가한 고은(右) 시인은 노르웨이 전통음악가 운니 레브리드와 함께 하우게의 시를 낭송했다. [실천문학사 제공]


◆아랍 문학과 교류 물꼬=‘제 1회 한국-아랍 문학 포럼’이 17·18일 서울 프리마호텔에서 열린다. 이집트 소설가 살와 바크르, 사우디 소설가 카이리야 알 사까프가 한국 작가 이경자·오수연씨와 ‘한국과 아랍에서의 여성 문학’을 주제로 토론한다. 내한에 맞춰 바크르의 장편 『황금마차』(아시아)도 출간된다. 한국외대 아랍어과 송경숙 교수는 “한국인들은 서구 언론을 통해 들여온 아랍에 대한 편향된 인식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문화 교류로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아랍연맹 22개국의 공용어인 아랍어는 세계 5대 언어로 분류된다. 그러나 국내에 번역된 아랍 문학 작품은 10권이 채 안 된다. 한국작가회의 민족문학연구소 김재용 소장(원광대 교수)은 “제3세계 문학은 노벨상 수상작품만 번역되는 등 유럽의 입맛에 맞는 작품만 국내에 소개돼 문제”라며 “유럽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진정한 전지구적 문학판을 만들어야 한다는 움직임이 있다”고 말했다.

◆문학 메신저로 나선 대사관들=지난 7일 폴란드대사관은 헤르베르트(1924∼1998)시인 10주기를 맞아 ‘헤르베르트 시인의 밤’을 개최했다. 폴란드 대사관 관계자는 “폴란드는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4명이나 배출했지만 한국에 알려진 사람은 없다”며 “역사적으로도 우리와 같은 아픔이 있는 만큼 문학적 교류가 더 절실하다”고 말했다.

13일에는 스웨덴 대사관에서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시리즈 2부 출판기념회가 열린다. 밀레니엄 3부작은 스웨덴에서만 300만부 넘게 팔리고 18개국에 번역·출간된 추리소설이다. 지난달 27일 열린 하우게 시선집 출판기념회는 실천문학사와 노르웨이 대사관이 공동주관했다.

◆세계문학 블루오션 열리나=11월 첫째주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해외문학 부문 5위에 스페인 작가 조셉 젤리네크의 『10번 교향곡』이 올랐다. 이제는 물량 공세 수준으로 쏟아지는 중국 작품을 비롯해 라틴아메리카와 인도·터키·몽골·남아프리카공화국·이스라엘 등 다양한 나라 작품들이 최근 속속 출간되고 있다. 교보문고 홍보팀 정길정 대리는 “일본문학의 붐이 가라앉은 후 영미권, 프랑스 작가들이 베스트셀러 순위를 독점해왔지만 최근 비영미권 작품의 비중이 조금씩 늘고 있다”고 말했다.

다산북스 서선행 홍보팀장은 “영미권 작가 인세가 뛰고 불황이 심화되면서 출판계가 그간 교류가 없었던 언어권 틈새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것”이라 설명했다. 한국문학번역원 윤지관 원장은 “최근 1년간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문학인들과 교류를 했고, 11월에는 이집트, 멕시코를 방문하지만 아직 걸음마 수준”이라며 “독자들의 균형 잡힌 세계관을 위해 더 많은 나라의 작품들이 번역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경희·임주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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