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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격 잃은 ‘오바마 줄대기’ 정부 대 정부 당당히 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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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통령 선거 결과를 바라보는 한국의 시선에는 다양한 요소가 얽혀 있다. 인종의 벽을 허문 미국 정치의 역동성에 대한 재발견과 버락 오바마 당선인이 펼칠 새 국제 질서에 대한 기대가 우선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일말의 불안감이 있다. 8년 만의 정권교체인 데다 당선인 본인도 한국엔 낯선 존재다. 한국인 중에 악수 한 번 해 본 사람을 찾기 힘들 정도다.

지난 4월 이명박 대통령에게 좋은 기회가 한 번 있었다. 첫 방미를 앞두고 민주·공화 대선 주자들과의 면담을 외교 실무자들이 추진해 성사 단계에 이르렀다. 무슨 이유에선지 계획은 중단됐다. 오바마 후보와의 면담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우려했다거나 캠프 데이비드 회담에 ‘올인’하기 위해서였다는 설명들이 있었다. 하지만 석연치 않았다. 동시에 방미한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가 오바마·힐러리·매케인 세 주자를 두루 만났던 걸 감안하면 아쉬움은 더욱 커진다.

이제 와서 너도나도 ‘오바마 줄대기’에 뛰어드는 모습은 그래서 더욱 볼썽사납다. 갑작스레 한국엔 민주당 전문가도 많아졌다. 오바마 참모인 아무개와 오래전부터 가깝다는 주장은 점잖은 편이다. 같은 대학을 나왔다는 사실만으로 오바마 인맥임을 자처한다면 코미디다.

17일로 날짜를 잡아둔 외통위 의원들을 비롯해 많은 인사가 방미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하지만 효과는 의문이다. 지금 와서 없던 인맥이 갑자기 생길 리 만무다. 더구나 상대방은 정권 인수팀과 차기 내각 구성에다 미증유의 금융위기 대응으로 제 코가 석 자다. “백지 상태에서 미국에 가봤자 결국엔 주미 대사관에 회동을 주선해 달라며 부담만 가중시킬 뿐”이란 게 외교부 간부의 얘기다. 상대방의 눈에 어떻게 비칠지도 생각해야 한다. 틈만 나면 세계 11, 12위의 경제강국임을 강조하는 나라가 체면 접어두고 ‘사돈의 팔촌’이라도 끈을 잡으려 애쓰는 모습을 가상하게 봐 줄 것이라면 오산이다.

미국의 대통령 당선인과 인맥이 없다는 게 새로운 현상도 아니다. 8년 전 부시 대통령도, 16년 전 클린턴 대통령도 우리에겐 늘 새로운 인물이었다. 텍사스와 아칸소 시골의 인맥을 무슨 수로 다 관리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지금은 상대적으로 여건이 좋다는 평가도 있다. 당선인 진영의 대외 정책 핵심 중엔 클린턴 행정부에 가담했던 인물이 많고 일선 외교관들과는 좋은 관계가 유지되고 있다. 그래서 관건은 정부 대 정부의 공식 경로가 튼실해야 한다는 점이다.

상대방은 정책 결정의 합리성을 중시하는 미국이다. 그 잣대는 자국의 국익이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정권인수팀과 국무장관 등 중요 포스트의 지명자와 보좌진 등 공식 채널을 통하는 게 정도이자 지름길이다. 어떻게 그들에게 설득력 있게 우리 입장을 설명하고 정책을 조율해 나갈지를 빈틈없이 준비하는 게 최우선인 것이다. 물밑 인맥도 때론 필요하겠지만 그것만으로 만사가 통할 것으로 믿는 구습은 이제 정리를 할 때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때 빚어진 한·미 관계의 엇박자가 인맥 부족보다는 바로 정책 조율의 부조화로 빚어진 것임을 되새겨야 할 필요가 있다.

예영준 정치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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