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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여성'을 외면해온 삶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다.다만 스스로 기이(奇異)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지켜야 할 대상도 없으면서 애써 지켜온 정조(貞操)가 새삼 기이하게 돌이켜진다.
누구를 위한,무엇을 위한 정조였던가.
.정조야말로 가장 기이한 성도착(性倒錯)'이라던 구르몽의 말이 되짚어지며 을희는 흠칫 놀랐다.혹시 자기애적(自己愛的)인 의식이 남성과의 성행위를 거부해온 것은 아닌지….
자신의 섹스를 자신이 독차지하기 위해.정조'를 가장(假裝)해왔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섬뜩했다.
을희는 남성 성기보다 여성 성기에 더 끌렸다.
남성 성기를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미켈란젤로의 다윗상은 논외(論外)로 치더라도 남성의 알몸을 드러낸 그 어떤 사진이나 그림에도 결코 흥분하진 않았다.그러나 여성 성기를 리얼하게 그린 그림이나 성기를 드러낸 사진엔 번번이 야릇한 흥분 을 느꼈다.
어째서 빚어지는 반응인지 알지는 못했으나 묘한 앙분으로 몸부림쳤다. 이것도 성도착의 하나인가.
여성이 여성의 육신에 끌린다면 분명히 성도착 증상일텐데,을희의 경우 이성 대하듯 동성에 집착하는 것은 아니다.결국은 자기자신에 탐닉하는 자기애 탓인가.
며느리의.여자 애인'사건은 을희로 하여금 남녀 양성(兩性)의존재양식을 다시 돌아보게 했다.
남자와 여자.이 세상을 가르고 존재하는 두 종류의 성이 얽히고 설켜 갈등의 문양을 짜내고 있다.암수가 존재하는 한 갈등도지속될 것이다.
모든 성도착은 동물적 초조감에 기인한다고도 구르몽은 말했다.
암수가 언제 어디서건 성적(性的) 욕구를 쉽사리 만족시킬 수만있다면 성도착은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그러나 그것은 성도착보다 더욱 나쁜 난혼제(亂婚制)를 불러들이게 될 것이라고 그는 경고하고 있다.
따라서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개개인의 슬기와 인내로 인한 해결법만이 남는 셈이다.아들과 며느리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내키지 않았지만 며느리에게 전화했다.수화기 앞에 쪼그리고 앉아 전화오기를 기다리고 있기라도 한양 며느리는 얼른 전화를 받았다. “에미다.나를 찾았었다구?” 대뜸 울음소리가 일었다.지금까지 내내 울고 있었던 것같았다.
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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