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문화 노트] 칸 영화제 권위는 맨발의 영화인서 나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0면

친절한 자원봉사자로 가득한 국내 영화제들과 달리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는 매우 권위주의적이다. 기자들의 취재카드만 해도 매체의 성격이나 칸 영화제 취재경력에 따라 '계급'이 나뉜다. 파란색 카드를 가진 기자는 시사회에 아무리 일찍 가도 줄을 서야 한다. 등급이 더 높은 분홍색 카드의 기자들이 먼저 들어간 뒤에야 입장이 가능하다. 저녁시간의 메인상영회 때는 나비넥타이나 드레스(여성) 정장이 필수다. 화려한 스타들을 앵글에 잡기 위해 치열한 몸싸움을 벌이는 사진기자들조차 턱시도 차림이다.

이런 귀족적 계급사회의 탈출구는 과연 어디에 있는 걸까. 답은 상영장 밖에 있다. 오전 9시에야 문을 여는 영화제 건물에 들어서기 위해 일찍부터 길게 줄을 선 기자들에게 한 미국 여성 감독이 다가왔다. 자신이 만든 TV다큐멘터리 영화 '전례없는:2000년 미국대선(Unprecedented:The 2000 Presidential Election)'의 상영일정을 적은 안내장을 나눠주기 위해서다. "나는 부시가 얼마나 파시스트인지를 보여주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들었다"며 "올 11월 미국 대선 전까지 많은 나라에서 이 영화를 봐 달라"고 했다. 조앤 세클러라고 밝힌 이 감독은 그동안 미국 내외의 영화제 60곳을 순례했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이미 선댄스채널에서 방송됐다"고 자랑했다.

칸영화제의 상영부문 가운데 '비평가 주간'이나 '감독 주간'은 본래 영화제 조직위원회가 만든 것이 아니다. 1968년 시민혁명의 와중에 영화제 개최가 한 차례 무산되고 난 뒤 칸의 권위주의에 반발한 영화인들이 별도로 행사를 치른 것이 전통이 됐다.

영화제는 언제나 새 영화, 새 목소리를 고대한다. 작품 선정위원들의 낙점을 기다리지 않고 자기 발로 뛰는 영화인들이 칸 영화제의 '권위주의'아닌 '권위'를 지탱하고 있었다.

이후남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