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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Have a Dream’ … 노예제 폐지 143년 만에 이룬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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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619년 20명의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이 네덜란드 상인들의 손에 이끌려 버지니아에 팔려왔을 때부터 흑인은 미국 사회의 어두운 그늘이었다. 1865년 남북전쟁의 결과로 노예제도는 폐지됐지만 흑인에 대한 차별행위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1956년 연방대법원 판결 이전까지 흑인들은 백인들과 한 버스에 나란히 앉을 수도 없었다. 2000년대 들어서조차 각급 선거에서 백인 유권자에게 악수를 거부당하거나 선거전단에서 사진을 뺀 흑인 후보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한 흑인 여성이 4일 버지니아주의 버지니아비치에서 열린 투표 축하 파티장에서 어머니에게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의 대통령 당선을 알리며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 여성은 전화로 “엄마, 우리가 해냈어요”라고 말했다. [버지니아비치 AP=연합뉴스]


첫 흑인 대통령의 탄생이 미국과 세계에 던지는 상징적인 의미와 실제적인 파급 효과는 역사적인 것이다.

흑인 대통령을 허락한 미국은 인종적 다양성(diversity)을 실질적으로 보장한 ‘새로운 미국’으로 재탄생했다. 미 정치사는 영화 ‘말콤 X’를 만든 스파이크 리가 예언한 대로 오바마 이전 ‘분열의 시대’에서 오바마 이후 ‘통합의 시대’로 구분 짓게 됐다.

그동안 흑인들의 정치적 진출은 꾸준히 진행돼 왔다. 첫 흑인 합참의장(콜린 파월)과 첫 흑인 여성 국무장관(콘돌리자 라이스)의 배출에 이어 선출 직에서도 흑인들은 약진했다. 흑인 주지사 지역이나 흑인 시장 도시와 인접해 사는 인구도 전체 미국인의 40%에 이를 정도로 넓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등장은 개인에게 무한한 가능성과 동등한 기회를 제공한다는 인식을 심어줘 미국 사회가 통합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전망이다. 조지메이슨대 마크 로젤 교수는 “주지사·시장·의원 등 지역사회 단위에선 이미 인종의 벽이 무너졌고, 흑인 지도자를 경험했던 백인 유권자가 늘어나면서 흑인에 대한 거부감이 줄었다”며 “이번 대선이 마지막 정점을 찍었다”고 평가했다.

물론 일각에선 인종 문제의 진전이나 흑인사회의 변화에 대한 성급한 기대는 무리라는 시각도 있다. 흑인 대통령의 등장이 흑인 사회의 높은 범죄율과 이혼율, 열악한 환경 등을 일거에 치료하는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흑인 대통령의 탄생은 미국 내 인종 분열상을 치료하는 새로운 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우선 흑인사회에 변화의 바람이 불어닥칠 전망이다. 뉴욕 타임스는 “그동안 인종차별의 그늘에 가려 현실 정치에 실망했던 흑인들이 정치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전했다. 냉소적 방관자의 입장에서 벗어나 흑인들의 적극적인 사회 참여가 이뤄질 경우 흑인들도 더 이상 약자나 피해자의 입장만을 주장할 수 없게 된다. 특히 오바마나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 등은 피해의식과 분노로 성장해온 흑인 지도자가 아니다. 의회와 행정부, 미 제도권 내에서 반듯하게 성장하며 꿈을 이뤘다. 오바마는 백인 사회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흑인사회에 일정한 책임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또 오바마 리더십은 미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큰 파장을 몰고 올 것이 틀림없다. 소수 인종에 대한 차별은 비단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영국·프랑스 등 유럽 국가에서도 소수 인종 출신이 정치적 비중을 가진 적이 없었다. 그러나 아프리카 케냐 출신의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인도네시아 출신 양아버지 등으로 얽힌 가족사로 제3세계에 대한 이해와 공감대가 있는 오바마가 미국의 대통령이 됨에 따라 소수 인종의 정치적 목소리가 높아질 전망이다.

워싱턴=김정욱 특파원

I Have a Dream

흑인 인권 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가 1963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흑인 집회에서 연설한 내용이다. 그는 “나에게 꿈이 있다(I Have a Dream)”며 “신의 자손으로 흑인이건 백인이건, 개신교이건 로마 가톨릭이건 유대인이건 간에 모두가 손에 손을 잡고 옛 흑인 영가를 함께 부르는 날을 향해 나아가자”고 말했다. 오바마는 킹 목사의 꿈을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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