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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미국 차만 감쌀까 걱정되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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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일러스트=박용석기자parkys@joongang.co.kr

“미국 자동차회사만 골라 지원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미국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 후보가 승리하자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의 한 임원은 대뜸 이런 반응을 보였다. 오바마는 자국 자동차 업계에 매우 우호적이었고, 선거에서 그들의 지지도 강하게 받았다.

“한·미 자동차 교역은 자유무역이 아니다.”(10월 15일 TV 토론회)“ “한국은 수십만 대의 차를 미국에 수출하지만 미국이 한국에 파는 것은 고작 5000대도 안 된다.”(6월 1일 사우스다코타주 유세) 이렇게 그는 한국을 직접 겨냥한 발언도 여러 번 했다. 이 때문에 현대차 그룹의 자동차산업연구소는 진작부터 오바마 당선이 국내 자동차 업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관한 보고서를 준비해왔다. 여기엔 “미국의 지원 대상 자동차 업체에서 현대차가 배제되지 않도록 불공정 문제를 적극 제기해야 한다”는 조언이 들어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역시 오바마 당선을 염두에 두고 보고서를 준비해왔다. 이 연구소는 그의 당선이 확실해진 5일 오후 1시30분쯤 ‘오바마 당선의 의미와 영향’이란 이슈보고서를 발표했다. 국내 기업들이 미국의 새 대통령 등장에 따른 이해득실을 따지기에 분주하다. 경기 부양과 보호무역주의로 대표되는 그의 정책기조가 가져올 득실을 계산하는 것이다. 희비는 업종별로 갈린다.

재계에서는 또 오바마 측과 소통할 수 있는 인맥을 찾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그가 미국 정계의 주류에 속해 있지 않았던 인물이라 그에게 줄이 닿는 사람은 별로 없다고 한다.


◆걱정하는 자동차·섬유·철강=”중국 섬유제품에 대한 모니터링 시스템을 가동하겠다.“ 오바마가 지난달 전미섬유협회연합회(NCTO)에서 보낸 질의서에 답변한 내용이다. 중국산 수입을 규제하기 위해 미국 정부가 직접 반덤핑 여부를 모니터링하겠다는 것이다. 섬유업계는 오바마의 이런 정책이 대미 수출에 가져올 득실을 저울질하고 있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 김부흥 통상마케팅팀장은 “경쟁국인 중국 섬유제품에 대한 규제는 단기적으론 득이 될 수 있지만 전반적으로 보호무역주의 강화로 이어져 우리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13%에 달하는 관세를 철폐할 기회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이 지연될 가능성이 큰 것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미국 총 수입량의 10%를 차지하는 우리 철강업계도 규제 강화를 우려한다. 현재 미국에서 철강과 관련해 발동 중인 190여 개 수입 규제 중 10%가 한국과 관련된 것이다. 철강협회 심윤수 부회장은 “오바마가 미국 산업 보호를 강조해 왔기 때문에 무역규제 강화가 예상된다”며 “철강뿐 아니라 모든 산업계가 공동으로 대응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유업계도 그의 당선이 달갑지 않다. 대한석유협회 조상범 과장은 “그는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를 강조하고 있어 석유업계에 불똥이 튈까 우려된다”고 전했다.

◆전력기자재·IT는 기대감=‘오바마 효과’를 기대하는 쪽도 있다. 일진그룹 관계자는 “오바마 정부가 들어서면 사회간접자본, 특히 노후화된 전력기자재 개선에 돈을 쏟을 것이다. 이미 미국에서 변압기 수주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의 당선이 수출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전력설비가 대개 50~60년이나 돼 앞으로 3~5년간 교체 수요가 많을 전망이다.

무선통신기기를 비롯한 정보기술(IT) 업계도 호재가 예상되는 분야다. 오바마는 연구개발 비용의 세액을 공제해주고 미국 전역에 차세대 브로드밴드를 설치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과거 클린턴 정부가 그랬듯이 전통적으로 민주당 정부가 IT 분야 육성에 적극적이었다. 현대경제연구원 유병규 경제연구본부장은 “국회는 한·미 FTA 비준을 서둘러 미국의 재협상 요구에 대응하는 카드로 사용해야 한다”며 “기업들은 미국의 경기 부양책을 이용해 수출을 늘리는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애란·이희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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