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채권 움켜쥔 중국 “달러 중심시대 허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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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경제의 입지가 확 달라질 듯하다. 물론 고속 성장이 약간 흔들리는 조짐은 있다. 하지만 위기에 빠진 달러 대신 위안화를 쥐고 있기 때문에 머잖아 미국을 밀어내고 세계 경제의 맹주가 될 것이란 분석까지 나온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1일자)는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15일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적극 참여하겠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잡지는 이 기사의 제목을 ‘중국이 무대의 중심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달았다.

그동안 중국은 국제경제 무대의 전면에 나서진 않았다. 지난달 국제통화기금(IMF) 총회에도 중국은 ‘관례’라며 재무차관을 보냈다. 베이징에서 열린 7차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의 성명도 원론적인 수준이었다. “우리가 함께 헤엄치지 않으면 물에 빠진다”며 중국의 기여를 호소한 조제 바호주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의 제안은 공허했다.

그러다 지난달 28일 러시아로 날아간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속마음을 드러냈다. 그는 “지금이 새로운 국제 금융질서를 만드는 데 가장 적합한 때”라며 “개도국의 발언권을 강화하고, 달러 외의 다른 통화를 사용하도록 국제 통화 시스템을 다변화해 안정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러 양국은 교역을 할 때 달러 대신 위안과 루블을 함께 사용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이 사실상 거부권을 행사하는 IMF 체제를 바꾸고, 달러 중심의 통화 체계를 다극화하려는 것이 중국의 속내라고 분석했다.

중국이 자신의 의도를 관철시킬 카드는 많다. 중국의 미 국채 보유액은 5410억 달러(8월)다. 일본에 이어 2위다. 중국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도 커졌다. “중국 경제를 연착륙시키는 것이 중국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기여”(원자바오 총리)라고 배짱을 부릴 정도다. 영국의 컨설팅사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는 “5년 안에 중국·인도가 주도하는 신흥경제권의 국내총생산(GDP)이 선진국 경제 규모를 추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렇다고 중국이 무작정 미국을 몰아붙이진 않을 전망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앨버트 키들의 말을 인용해 “중국은 현존하는 권력(서구 선진국)에 문제 국가로 비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분석했다. 급성장했지만 아직 선진국과 격차가 큰 현재로선 역풍을 맞을 가능성을 감안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인권, 기후변화, 대만 문제 등 약점도 적지 않다.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이 아무리 부드러운 외교를 펼치더라도 미국에는 (중국의 성장이) 충격일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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