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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에서 세상을 읽다] 대학생 “취직하고 싶어요” 노인들 “자식 눈치 보여”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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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서 만난 사람 10명 중 7~8명꼴로 생활이 어려워졌다고 답했다. 이들에게 ‘생활에 어떤 불안감이 있느냐’고 물었다. 불투명한 장래에 대한 불안감을 거론하는 이가 많았다.

“삶의 질이 앞으로 더 떨어질까봐 걱정된다.”
“노후대책이 없어 불안하다.”
“침체의 골이 깊어질 것 같다.”
“졸업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았지만 뉴스를 보면서 막연한 불안감을 느낀다.”
“우리 세대는 그냥 살겠는데 우리 밑에 애들은 뭐 먹고 살지, 그게 제일 걱정이다.”

자신이 몸담은 일터에 따라 느끼는 불안감의 강도는 달랐다. 한 회사원은 “체감하는 게 아직 적다. 정말 망했다 싶을 정도는 아닌데 심리만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자영업을 하는 이들은 “매출이 30~40% 감소했다” “공연예술 쪽에 종사하는데 관람객 수가 많이 줄었다” “장사를 하는데 손님이 많이 줄었다”고 하소연했다. 학원에서 강사 아르바이트를 하는 20대 여성은 “등록하는 학생들이 매일 줄고 있다. 학원 운영이 어려워지면서 나도 해직되지 않을까 불안하다”고 했다. 한 대학생은 “등록금이 치솟고 학자금 대출 이자도 계속 올라서 졸업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직업과 관계 없이 물가 상승에 대한 우려를 공통적으로 나타냈다.

“1000원짜리 김밥이 사라졌다. 싸이월드 아이템 사는 데 드는 도토리마저 5개에서 6개로 올랐다.”
“물가가 올라서 지출이 늘었다.”
이런 불안감은 생활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다양한 답변들이 나왔다. 먼저 가정생활에 충실하게 됐다는 답변이 눈에 띄었다.
“술자리를 줄이고 일찍 퇴근하다 보니 가족들과 사이가 좋아졌다.”
“통신비 절약 차원에서 문자를 배웠는데, 딸과 더 가까워진 것 같다.”
“퇴근해서 산책이나 걷기를 많이 한다.”
“돈을 쓰게 되니까 친구들을 덜 만난다.”

그러나 노인이 느끼는 가족관계의 변화는 다르게 나타났다. “용돈을 타서 쓰는데 자식 눈치를 조금 더 보게 되는 것 같다” “자식들한테서 오는 안부 전화가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한 취업 준비생은 “엄마의 구박이 심해졌다. 빨리 취업하라고 채근하신다”고 전했다. 한 남성 직장인은 “데이트를 많이 못해서 여자 친구와 사이가 안 좋아졌다”고 했다.

금융위기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경제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경제 뉴스를 더 많이 보게 됐다.”
“친구들 만나면 경제, 환율 얘기를 많이 한다.”
“인터넷으로 주식을 자주 체크하게 된다.”

반면 “경제 뉴스만 나오면 가슴이 떨려서 TV를 꺼버린다” “스트레스를 받아서 뉴스를 안 보게 된다”는 답변도 있었다. 한 주부는 “남편 몰래 들어둔 펀드가 망가져 고민”이라고 했다. 뒤숭숭해진 사회 분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사람들이 악만 남은 것 같다.”
“세상이 각박해져서 아이들을 밖에 내보내기 무섭다.”
살림살이를 하는 방식에 있어선 좀 더 계획적이 됐다는 답변이 줄을 이었다.
“안 쓰던 가계부를 쓰게 됐다.”
“오늘 하루 내가 돈을 얼마나 썼는지 기록을 하고 있다.”
“예전엔 개념 없이 신용카드를 썼는데, 요즘은 하루의 예산을 짜고 생활한다.”

생활 속 다양한 절약 아이디어도 제시됐다. “쓰레기를 버릴 때 물기를 다 뺀 다음 종량제 봉투에 넣는다” “과일 껍질을 믹서기에 갈아서 화분에 거름으로 준다” 등이다.

최근 맞벌이를 시작했다는 응답자도 두 명 있었다. 한 주부는 “애기 아빠 혼자 버는 것으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취직을 했다”고 했다.

이례적으로 “파티를 자주 열어서 행복할 뿐”이란 답변이 있었다. 한 미국인은 “환율이 오르면서 달러 기준으로 같은 월급을 받아도 원화로 쓸 때는 훨씬 많은 것을 살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사업을 한다는 40대 교포 여성은 “달러 강세로 사업을 하기엔 요즘 같은 때가 좋지만, 한국 국민들에겐 미안한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미국 월가 잘못 크지만, 현정부가 잘 했어야-금융위기 책임과 대책은

지금의 금융위기가 미국 월가와 국제금융시스템의 방만함에서 비롯됐다는 시각이 많았다. 하지만 현 정부와 전 정부의 정책적인 실책이 해외변수 못지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의견도 상당수 나왔다.

‘당신에게 지금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들은 정부의 경제운용에 관한 당부를 쏟아냈다. 한 직장인은 “미국을 탓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정책을 잘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현 정부나 전 정부나 모두 돈 있는 사람들에게만 혜택을 주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주가를 3000포인트까지 올리겠다고 했었다. 이런 지키지도 못할 약속은 하면 안 된다.”
“정부가 추진력이 너무 없었던 것 같다. 갈팡질팡하는 게 보기 싫다.”
“정부 정책으로 상대적 박탈감이 생기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행정부 관료들과 정치인들이 개인 욕심을 버리고 나라를 잘 운영해 줘야 우리 서민들이 잘살 수 있다.”

답변에 가장 많이 나온 단어는 ‘안정’이었다. 물가 안정, 고용 안정, 경기 안정, 안정된 삶, 안정된 연금제도, 생활 안정, 교육 정책의 안정…. 경제 각 부문에서 나타나고 있는 불안심리에 대한 반작용으로 보인다. 60대 여성은 “내게 절실한 것은 현상 유지라도 하는 것”이라고 했다.

특히 금융과 부동산 시장이 안정세를 되찾길 기대하는 사람이 많았다. “금리가 높으니까 자금이 안 풀린다”거나 “주식이 좀 올라서 본전이라도 찾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부동산 가격 하락에도 “내집 장만을 하고 싶다”는 답변이 서너 명 있었다. 가진 자들에 대해선 “쓸 돈은 써야 한다”는 지적이 눈에 띄었다.

“오렌지족이라도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돈 많은 사람들이 많이 써야 우리 같은 사람도 돈을 좀 벌지 않겠나.”

“여가를 즐기는 사람이 늘어나 공연문화가 활성화하길 바란다.”

소박한 바람도 적지 않았다. 한 20대 남성은 “스트레스 받지 않고 맛있는 저녁식사를 하고 싶다. 돈 걱정 없이 먹어본 지가 너무 오래됐다”고 했다. 꽃가게 직원은 “손님들이 꽃 값이 너무 올랐다고 하시는데 꽃과 포장재 값 상승 분을 빼면 남는 장사가 아니라는 점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권석천 기자 sck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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