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의반 타의반’이라는 뒷말을 남기고 그는 지금 미국 워싱턴에서 5개월째 ‘섶나무에 누워 자고 곰 쓸개를 맛보는’ 와신상담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그런 그의 이름이 다시 여의도를 배회하고 있다. 누가 그를 불러내는 걸까. 그를 미워하고 쫓아냈던 정치 인심은 다시 그를 용서한 것일까.
의문이 풀리기까지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 같다. 몇 가지 징후 때문이다.
징후 하나. 이 전 의원의 최측근인 진수희 한나라당 의원이 지난달 29일 워싱턴으로 날아갔다. 진 의원은 4일 귀국할 예정이다. 진 의원을 미국으로 긴급 호출한 사람은 바로 이 전 의원이다. 한나라당에선 ‘이 전 의원이 귀국을 결심한 뒤 한국 내 분위기를 파악하려고 불렀다’는 분석이 나온다. 공교롭게도 이 전 의원과 가까운 의원 8명은 지난달 25일 “이 전 의원 같은 구심점이 여권에 필요하다”는 의견을 모았다. 그 때문에 이 전 의원이 진 의원에게 어떤 얘기를 듣고, 어떤 결정을 내릴지에 따라 ‘이재오 복귀설’의 의문이 풀릴 수 있다.
징후 둘. 여권 일각에선 연말 인재 재배치론과 더불어 ‘친정체제 구축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집권 2년차를 맞아 정권을 책임지고 이끌 ‘이명박 사람들’이 당·정·청의 주요 포스트에 더 많이 포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청와대에서도 이런 얘기가 나온다.
하지만 이재오 역할론은 아직 통일된 모양새는 아니다. 측근 인사들조차 “연말에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나 국정원장 등을 맡아 내각에 들어가야 한다”는 주장에서부터 “내년 초 대통령 정무특보처럼 눈에 띄지 않는 자리를 맡아야 한다” “이 대통령이 먼저 부르기 전에는 귀국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까지 다양하다.
문제는 이 전 의원의 국내 정치 복귀가 불러올 파장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당장 여권 내 힘의 구도가 뒤바뀔 수 있다. 대선 이전의 이명박 캠프는 원로그룹, 이 전 의원 중심의 소장그룹, 정두언 의원 중심의 선대위 실무그룹 등 삼두 체제였다. 이 가운데 소장그룹과 실무그룹은 지금 위축돼 있다. 이 때문에 이 전 의원의 복귀는 이런 구도에 격랑을 일으킬 수 있다. 무엇보다 자기 주장이 강한 이 전 의원의 스타일을 감안할 때 박근혜 전 대표 측과 긴장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 문국현 의원에 대한 기소와 때맞춰 이 전 의원 복귀론이 불거지자 자칫 여야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이재오 역할론만큼의 조기 귀국 반대론이 존재하는 이유다.
이 전 의원은 전화통화에서 “언제 돌아오느냐”고 묻자 “미국 교수 생활이 재미있다”고만 답했다. 그는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 객원교수다. 한국인 교수 한 명과 동거 중이다. 아침식사를 빵으로 때운 뒤 자전거로 30여㎞를 통학한다. 대학원 경비원에게 한국말을 가르쳐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도 듣고 있다. 이 전 의원의 통역을 도와주는 이는 이화여대 김모 교수의 아들이다. 김 교수는 경선 때 이 대통령을 외곽에서 도왔다.
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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