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이 대출하도록 정부 나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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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사진)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정부 지원을 받은 은행이 돈을 금고에 쟁여놓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은행에 자금을 지원해주되 이 돈을 대출하도록 해 시중에 돈이 돌도록 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27일(현지시간) 뉴욕 타임스(NYT)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 정부가 은행 부분 국유화를 단행하면서 영국 정부와 달리 자금지원의 조건으로 은행의 대출을 요구하지 않아 대책의 실효성을 떨어뜨렸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 정부가 대형 주택담보대출회사 두 곳을 국유화할 때도 어정쩡한 태도를 취해 사태를 악화시켰다고 비판했다. 크루그먼은 “패니메이·프레디맥의 빚이 미국 정부에 의해 보증된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바람에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급등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같은 실수는 정부의 시장개입에 대한 부시 행정부의 거부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며 “이유야 어찌됐든 정부의 모호한 태도로 인해 상황은 수습되기는커녕 더 나빠지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회사를 지원할 바에는 시장경제 원칙에 얽매여 어설프게 하지 말고 확실하게 지원하라는 뜻으로, 우리 정부의 은행 지원 과정에서도 참고할 만한 대목이다.

크루그먼은 또 “한국과 러시아·브라질 같은 신흥시장이 국제 금융위기의 2차 진원지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1990년대 말 국제 금융위기의 진원지였던 이들 국가는 당시 경험을 토대로 미래에 닥칠 위기에 대비해 거액의 달러와 유로를 쌓았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은 신흥시장이 미국과 따로 움직이는 탈동조화를 이룰 것으로 봤다”고 말했다. 심지어 올 3월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도 “탈동조화는 신화가 아니다”며 “신흥시장이 세계경제를 살릴 것”이라고 독자들을 안심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신흥시장은 곤경에 처했으며 신흥시장의 경착륙이 세계 금융위기의 2차 진원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 이유로 신흥국 정부들은 외환위기 후 외환보유액을 쌓고 외화를 빌리는 데는 신중해진 반면 은행과 기업은 외화 빚을 마구 가져다 쓴 점을 꼽았다. 예컨대 러시아의 은행과 기업은 루블화보다 달러화 금리가 싸지자 해외에서 마구 돈을 끌어다 썼으나 국제시장에 돈줄이 마르자 곤경에 빠졌다는 것이다.

그는 “90년대 말 금융위기는 당시에는 큰일처럼 보였지만 지금 세계가 겪고 있는 위기에 비하면 ‘해변에서 보낸 하루’정도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미국 은행의 위기와 헤지펀드·신흥시장의 곤경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더 심한 고통의 악순환에 빠져들고 있다”고 우려했다.

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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