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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형 원자로, 에너지증폭기에 투자하라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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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호 34면

1984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카를로 루비아는 W중간자와 Z중간자를 발견해 현대물리학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대부분의 노벨상은 연구 업적이 발표된 후 20~30년이 지나서야 받지만 루비아 박사의 연구는 83년 논문을 발표한 이듬해 노벨상을 받을 정도로 획기적 발견이었다. 그는 노벨상 수상 후 에너지 문제를 연구해 90년대 후반 새로운 형의 원자로를 제안했다.

자신이 설계한 신개념의 원자로에 ‘에너지증폭기(Energy Amplifier)’라는 이름을 붙였다. 에너지증폭기란 지금의 원자로가 가진 문제들을 해결하는 혁신적 원자로다.
원자력에너지는 우리나라 전력 생산의 약 40%를 감당할 정도로 중요한 에너지원이지만 부작용도 뒤따른다. 첫째,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의 발생이다. 둘째, 각종 고준위 핵 폐기물 발생이다. 셋째, 지진 등에 대비한 안전성 문제다. 넷째, 매장량이 한정된 우라늄의 고갈 문제다. 이런 문제들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에너지증폭기다.

에너지증폭기는 우라늄 대신 토륨 원소를 사용한다. 토륨의 매장량은 납의 매장량과 유사할 정도로 풍부할 뿐만 아니라 거의 사용되지 않아 가격도 저렴하다. 에너지증폭기에는 우라늄을 사용하지 않으므로 핵분열이 일어나지 않는다. 토륨을 이용하면서도 핵분열이 일어나게 하려면 많은 양의 중성자를 토륨에 쏘아주어야 한다. 이때 중성자를 만들기 위해 가속기가 필요하다. 가속기 스위치를 끄면 핵분열이 멈추게 돼 유사시엔 가속기를 멈춰 곧바로 원자로를 끌 수 있다.

게다가 토륨에선 플루토늄이 생기지 않아 북한 핵문제와 같은 핵물질·핵폭탄 제조 우려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최근 싱가포르의 고위 관료가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를 방문했다. 싱가포르의 주변국인 동남아 국가들이 에너지난을 해결하기 위해 원자로 건설에 관심을 갖게 되자 핵무기 개발 가능성을 우려한 싱가포르가 에너지증폭기를 관찰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동남아뿐만 아니라 개도국들은 경제발전에 필요한 안정적 에너지원을 확보하기 위해 심혈을 쏟고 있다. 그래서 원자력에너지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하지만 개도국들이 원자로를 많이 가질수록 핵문제가 확산될 소지가 있어 미국 등 선진국들은 경계심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에너지증폭기는 개도국과 선진국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대안이다. 핵문제를 발생시키지 않으므로 꺼릴 이유가 없다. 가속기가 만들어내는 많은 중성자 때문에 원자로에서 생기는 고준위 방사성물질도 거의 남지 않는다. 일부 고준위 방사성물질은 남지만 기존 원자로의 경우와 비교하면 미량에 불과하다. 심지어 기존 원자로에서 나온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에너지증폭기 안에 넣어 고준위 핵 폐기물을 처리하는 것도 가능하다. 따라서 골칫거리인 방사성 폐기물 문제는 대부분 해결된다.

이런 에너지증폭기에 대해 일부 국가는 적극적 연구 투자를 하고 있다. 토륨 매장량이 전 세계 2위인 인도는 이 분야에 이미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토륨 매장량이 전 세계 4위인 노르웨이 정부는 올봄 이 기술에 대한 현황 보고서를 받고 정책적으로 추진할 것인지 검토 중이다. 러시아도 많은 연구를 하고 있다. 국내 원자력 전문가들도 에너지증폭기에 한때 관심을 기울였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미국을 중심으로 제4세대 원자로 설계를 위한 국제 공동 연구개발 사업이 추진되면서 에너지증폭기 연구에 투자하지 못하고 있다.

인류가 필요로 하는 에너지의 형태는 매우 다양하다. 다양한 에너지 수요를 충족시키려면 다양한 에너지원을 찾아내는 것이 필요하고, 어느 하나의 에너지원만 강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한국 정부와 원자력계가 에너지증폭기의 장점에 주목해 차세대 에너지원을 다각적이고 전략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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