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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화가 유영국화백 전시를 보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추상미술을 많이 접해본 사람이 아니라면 캔버스 안에서 아무런구체적 형태도 찾을수 없을때 당혹감을 느낀다.그리고는 곧 「추상미술은 어렵고 재미없는 것」이라고 결론지어 버린다.추상미술 1세대 작가인 유영국 화백의 작품도 마찬가지.
하지만 유화백의 초기작부터 근작까지 시대별로 나란히 전시돼 있는 이번 호암갤러리 전시에서는 흐름을 따져가면서 작품을 감상하면 마치 한사람의 인생사를 풀어놓은 한 편의 소설을 보는 듯한 색다른 감흥을 느낄 수 있다.
갤러리에 들어서서 가장 먼저 마주치게 되는 작품은 유영국 화백 특유의 「산」작품이 아니라 흑백의 대비가 분명하고 깔끔하게처리된 부조 작품들이다.30년대 후반에서 40년대 초반 옛 전통을 넘어 새롭고 독창적인 작품을 시도했던 젊은 유영국의 실험정신을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이다.
한발 더 나아가면 격정적인 에너지가 화면 가득히 넘치는 60년대 작품들을 볼 수 있다.유화백이 가장 왕성하게 활동했던 40대에 그린 작품들로 자연의 모습이라기보다 작가가 자연에서 느낀 역동적인 감정을 캔버스에 뿜어낸 것이다.
분명한 선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 표현주의적 작품들과는 완전히 반대로 다음엔 원과 삼각형등 기하학적인 기본형태가 평면적으로 표현된 순수기하추상 작품들이 걸려 있어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눈에 띄는 작품은 72년도에 그린 『작품』.
이전 작품들이 모두 절대적인 평면공간을 담고 있다면 이 『작품』을 비롯한 70년대 작품들은 위에서 아래의 산을 내려보는 듯한 공간감이 강조돼 있다.
삼각형 색면 사이사이에 선으로 음영을 넣어 산맥을 표현하는등입체감이 강하게 들어 있다.마지막에 전시된 80년대 작품들은 색감이 이전보다 눈에 띄게 맑고 따스해진 것을 느낄 수 있다.
노년의 온화함이 반영된 탓이다.
한마디로 실험적 시도로 가득찬 20대에서 정열적인 40대를 거쳐 온화한 60대로 변모하는 유화백의 인생이 그의 작품에 그대로 들어있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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