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速鐵노선 지도만 보고 결정-허점 투성이 상리터널 뿐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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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막대한 공사비를 날리고 공사기간도 5년이상 지연시킨 허점투성이 상리터널(경기도화성군봉담면)공사의 원인이 드러났다.역시 정부측의 안이한 판단이 문제였다.지금까지 건설교통부와 고속철도건설공단은 『상리터널 구간의 폐광은 발주처의 기술조 사가 끝난후실시설계 회사가 현장 지반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발견됐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이 해명은 사실이 아니었다.상리터널 구간의 폐광 존재는 현장 지반조사 과정이 아니라 애초 기본설계 과정에서 이미 확인됐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당시 기본설계 책임자였던 차동득(車東得)대구시 교통개선기획단장은 『폐광이 있다는걸 애초에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게다가 그는 『문제가 있으니 국내외 전문가들로 별도 기술자문단을 구성하자』고 건의까지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묵살됐다.고속철도건설공단은 재검토 대신 당초 계획대로 폐광위로 고속철도가 통과하도록 밀어붙인 것이다.
상리터널 구간에 대해 실시설계를 한 ㈜우보엔지니어링측은 『폐광위를 통과하는게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발주처인 고속철도공단측이 기본노선을 그렇게 잡아놓았기 때문에 우리로선 노선대로 설계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우보엔지니어링측은 대신 일부 구간의 노선을 좌측으로 30쯤 옮기는 선으로 「땜질」을 했다고 한다.그것도 지질조사 결과등을고속철도공단측에 들이대며 우겨서 옮겼다는 것.
이에 대해 고속철도건설공단은 『해당구간에 대한 노선변경등 모든 책임이 실시설계 회사인 우보엔지니어링에 있었고 기본설계에서는 가장 경제적으로 판단되는 노선을 제공했을뿐』이라고 말했다.
설계회사측은 발주처인 공단에 책임을 미루고,공단은 실시설계 회사에 화살을 돌리는 식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고속철도 4백26㎞ 구간중 안전상의 위험이 있는 곳이 과연 상리터널뿐이겠느냐는 것이다.
고속철도 건설사업은 89년 7월부터 91년 2월까지 기술조사및 기본설계가 이뤄졌다고 한다.기본노선은 90년 6월 확정됐다. 따라서 89년 7월부터 90년 6월사이의 12개월동안 전구간에 대한 기술조사와 기본설계가 사실상 마무리된 셈이다.
이와 관련,당시 노선확정 과정에 참여했던 한 고위관계자는 『전구간 노선이 현장에 대한 정밀조사없이 도상(圖上)에서 이뤄졌다』고 말했다.상리터널은 중앙일보의 최초보도 이후 여론이 빗발치자 결국 노선수정 과정을 거쳤다.
그러나 전국 14개 공사구간중 이와 유사한 사례가 과연 또 없을지 국민들은 불안하기만 하다.
김현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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