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쓰는가정문화>18.이혼.재혼이 죄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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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박미순(34.서울마포구성산동)씨는 지난 3월 「이혼녀」란 꼬리표를 달면서 전업주부에서 생활설계사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일단 시댁에 맡겨놓은 여섯살배기 아들이 눈에 밟히지만 이혼은 잘 했다고 생각한다.새로 시작한 일은 힘들긴 해도 보람있다』고 朴씨는 말한다.
朴씨가 남의 일인 줄만 알았던 이혼을 결심하게 된 것은 남편이 지방파견근무중 다른 여자와 딴살림차린 것을 알게 된 후.
시부모는 물론 시누이 내외까지 같이 살며 살림을 도맡아 했던朴씨는 하늘이 무너지는듯한 심정을 누르며 남편을 간통죄로 고소했다. 시댁식구들은 오히려 『아이도 있는데 조용히 기다리면 될것을 고소까지 한다』고 朴씨를 비난했다.하지만 남편의 마음이 이미 돌아섰다고 판단한 朴씨는 결국 합의이혼으로 남편과 결별했다. 이혼이 급증하고 있다.
한국여성개발원 변화순 (가족사회학)박사는 이러한 이혼의 보편화현상을 여성의 경제적 독립성 향상,자의식 발달,부부관계에 있어 애정적 측면의 강화,그리고 재산권이나 양육권문제 해결에 있어 법적 평등성 향상 등에 기인한 것으로 분석한다 .
卞박사는 『이혼이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이젠 보다 열린 시각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한다.
재혼율 또한 꾸준한 증가를 보이고 있다.
특히 여성의 재혼이 눈에 띄게 늘어나 재혼이 남성뿐만 아니라여성에게도 보다 나은 삶을 위한 「선택」으로 자리잡아 가는 셈. 재혼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자녀문제다.
특히 사춘기 자녀들의 반발은 재혼가정을 불안정하게 하는 큰 요인. 20년전 어머니를 여읜 김미란(여.37.현 미국거주)씨는 어머니가 돌아가신뒤 1년만에 재혼한 아버지를 이해할수 없었다. 당시 고교1년생이던 金씨는 아버지와 대화를 단절한 채 돌아가신 어머니의 물건을 애지중지하는 것등으로 불만을 나타냈다.
결국 7년만에 아버지는 새엄마와 이혼했다.
철이든 후 金씨는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고,지난 87년엔 아버지가 대학생 딸을 둔 10세 연하의 여성과 세번째 인연을 맺도록 앞장섰다.
한국노인복지회의 조기동 회장은 『노인들은 체면때문에 선뜻 재혼의사를 밝히지 못한다』며 『아직까진 자녀들이 먼저 나서줘야 재혼할 수 있는 것이 우리 풍토』라고 말한다.
이에 비해 올해 4월 결혼한 노영식(64)씨.전명순(59.인천동암동)씨 부부는 스스로 인생 황혼기의 벗을 찾기 위해 나섰던 경우.50세 이상 독신노인들을 위한 원우문화센터에서 만나 일부 친척의 반대를 극복하고 재혼에 성공한 이들은 『이젠 외롭지 않다』고 기뻐한다.
의붓자녀들과의 재산권 다툼때문에 호적정리를 꺼리는 대부분의 경우와 달리 노씨부부는 재혼과 동시에 혼인신고까지 마쳤다.
재혼을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씩 변화의 조짐을 보이곤 있지만 『당사자나 주변사람 모두 아직도 상대방 입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趙회장은 지적한다.
이혼.사별자들의 사회적응 및 만남을 위한 프로그램이 적은 것도 문제다.
한국법률상담소의 여성사별자모임 기러기교실이나 원우문화센터정도가 적응프로그램을 갖고 있고 결혼정보회사 선우이벤트에서 94년부터 둥지모임을 주선해온 정도가 고작.
한국여성개발원 卞박사는 『홀로 된 이들이 인생의 실패자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사회적응프로그램을 활성화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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