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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 걸레질은 할 줄 아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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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기 초 어느 날 미술도 했고 4교시까지 수업을 하고나니 아이들 책상이 말이 아니었다. 지우개 가루와 색연필, 물감의 흔적에 저절로 눈살을 찌푸리게 되었다. 아이들과의 이 문제에 대해 회의를 한 후 우리반 규칙 하나가 생겼다. 우선 손바닥만한 개인용 걸레를 준비한다. 그리고 급식을 먹기 전, 손 씻으러 갈 때 개인용 걸레도 함께 가져가 빨아 온다. 빨아온 걸레로 책상을 깨끗이 닦은 후 급식을 먹는다. 급식을 다 먹은 후에는 양치를 하고 책상을 닦은 개인 걸레는 꼭 빨아온다.

시행 후 한 달, 우리 반 아이들에겐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1주 : 교사가 몇 번이고 말해도 집에 '걸레가 없다.'는 둥 '깜박 잊었다.'는 둥의 다양한 이유로 걸레를 가져오기 귀찮아 안 가져오는 아이들이 몇 명 있다. 옆 짝이 닦은 후 그 걸레를 빌려서 자기 책상을 닦는다. 그리고 짝이 걸레를 빨 때에는 모른척하는 모르쇠군이 보인다.

2주 : 몇몇 착실한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걸레를 빨 때는 물장난, 책상을 닦을 때는 걸레장난으로 일관한다. 그래도 닦는 활동만은 신나게 한다.

3주 : 친구 책상까지 닦겠다고 하는 아이들이 생겨났다. 식사중인 내게 와서는 귀에 대고 이런다. '책상을 닦아 버릇 했더니 이젠 책상을 닦거나 방을 치우고 나면 기분도 상쾌해지는 거 같다'고 말이다.

4주 : 3주 동안 걸레질 훈련이 끝났다. 아이들은 걸레질을 할 때는 손바닥만 하게 접은 후 힘껏 힘을 주어 책상을 닦아야 한다는 책상 관리의 노련함이 생겼다. 학교에서 급식을 먹기전 자기 책상을 닦는 습관이 생기고 걸레 빠는 법도 제대로 배우고 나니 집에서도 매일같이 식탁 닦는 것은 자기 몫이 되었다고 하며 자랑한다. 식탁을 닦고 밥을 먹으면 밥이 더 맛있게 느껴진다며 날 보고 빙그레 웃는다.

채연이(가명)는 주말이 되면 학교에서 사용하던 걸레를 집으로 가져간다. 속옷처럼 삶기 위해서이다. 어머니께서 걸레질과 더불어 걸레를 삶는 방법도 배우라고 하셨다고 한다. 삶고 난 뒤에 걸레를 보면 지저분하던 걸레가 새 손수건처럼 하얗게 변하는 것이 마치 과학실험을 하는 것 같이 즐겁다며 일기장 한켠에 걸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적어 온 적이 있다.

채연이 학부모님께서는 내게 전화를 하셔서 '걸레질' 하나로 아이에게 많은 변화가 생긴 것 같다며 흐뭇해하셨다.

그렇다면 채연이에게는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첫째는 청소하는데 관심이 생겼다. 예전에는 방청소를 시키면 혼나지 않기 위해 대충 대충 빨리 하고 말거나 청소 자체를 싫어했는데 우리반 규칙이 생긴 이후로는 집구석 구석 살피며 이곳이 너무 지저분하다는 둥 이런 건 어떻게 닦아야 잘 지워지냐는 둥 청소와 관련된 질문하는 횟수가 늘어났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자발적으로 청소하는 횟수가 늘고, 청소를 하고 난 뒤에 칭찬해 주지 않아도 깨끗하게 변화된 모습만으로도 스스로 뿌듯해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생활에 활력소가 생겼다. 청소가 아이의 스트레스 해소의 매체체가 되었다. 어떤 아이들은 컴퓨터 게임을 하며 스트레스 해소를 하고 또 어떤 아이는 축구를 하며 스트레스 해소를 하듯이 채연이는 청소를 통해 스트레스 해소하는 것 같다며 어느 순간부터 신경질 적인 말대구나 투정을 부리는 횟수가 줄었다고 한다. 이렇게 되다보니 부모와 아이와의 관계가 좀 더 원만해졌다고 한다.

셋째는 성실함이 생겼다. 주변을 어지럽히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이런 저런 물건들로 항상 지저분했던 책상이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는 날이 많아졌다고 한다. 정리 정돈하는 습관과 학업 태도는 상관관계가 높다. 덕분에 채연이의 학습 태도도 매우 좋아졌다.

'나비효과'는 작은 변화가 결과적으로 엄청난 변화를 초래할 수 있는 경우를 표현할 때 쓰는 말이다. '걸레질 열심히 하기'는 매우 미세한 변화지만 이렇게 사소한 생활 습관 하나만으로도 아이의 생활 태도와 인성 자체의 변화까지도 영향을 끼친다.

'걸레질 규칙'이 생긴 후 우리 반 준형이 어머님께서는 집에 사용하지 않는 빨래 건조대가 있다며 아이 편에 보내주셔서 교실 한 켠에 아이들의 걸레를 빨아 널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부족한 교사라도 늘 뒤에서 도와주시는 이런 부모님에게서 나 역시 많은 것을 배운다. 그런데 무조건 '걸레질 규칙'에 대해 호의적인 것은 아닌 것 같다.

'걸레질 규칙' 시행 일주일 후부터 줄곧 물티슈를 사용하는 아이가 있어 물어보았더니 일주일 동안 사용한 걸레를 주말에 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빨아오라고 했더니 부모님께서 물티슈를 사다주며 이런 거 할 시간에 공부 한자 더하라고 말씀하셨다 한다. 걸레 빨러 가는 시간에 공부하라고... 넌 그런거 안 해도 된다고... 아이를 앞에 두고 더 이상 내 의견을 말하기가 난처해 학생이 하고 싶은 것을 물어본 후 원하는 데로 하라고 했다. 학교에서 책상도 늘 어질러져 있고 가방조차 책상걸이에 걸지 못하는 아이의 생활 습관이 제대로 된 걸레질 습관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바뀌어 질 수 있다는 것을 이 학생의 부모는 알고 있을까?

우리 반 아이들은 일주일에 두 번 일기장을 제출한다. 가끔 주제를 제시해주기도 하는데 이번 주제는 '내가 하는 집안일'이었다. 아이들이 집에서 하는 일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3학년 아이들이 하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 했지만 많은 어머님들께서 아이에게 집안일을 정해서 시키고 계셨다. 방청소부터 어머니의 커피를 타드리는 것까지 너무나 다양했다. 일기의 마지막은 부모님의 칭찬에 대한 이야기나, 청소한 뒤의 성취감 때문에 뿌듯하고 행복해서 앞으로도 꾸준히 계속 하고 싶다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내 아이는 작은 변화 하나만으로 큰 사람이 될 수 있다. 아이와 나란히 앉아 집안일 중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이나 해보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얘기해보자. 그리고 무조건 '앞으로 ○○는 네가 하렴.'이라고 책임만 넘기지 말고, 아무리 쉬운 일이더라도 방법부터 정확하기 가르쳐 준 후 아이 스스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자. 걸레 빠는 것부터 시작해도 좋다. 시커멓게 때가 많이 묻은 걸레가 하얗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며 아이와 함께 즐거운 청소를 시작해보자. '나비 효과'는 내 아이에게도 나타난다.

김범준 칼럼니스트

※ 매주 화요일 연재되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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