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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 되는 ‘747 공약’이 화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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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경제 상황이 심각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속 국내 주식·외환시장이 요동친다. 신규 취업자 수와 소비가 급감하는 등 파장이 실물경제로 번지는데도 정부는 보이지 않는다. 노태우 정부 때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김종인(68) 전 의원을 두 시간 동안 만나 한국 경제호가 처한 상황을 진단하고 그 해법을 모색했다. 서강대 교수 출신인 김 전 의원은 1990년 재벌 소유 비업무용 부동산의 매각을 유도한 5·8 조치를 주도하는 등 선이 굵은 경제개혁가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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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국어대 졸업· 독일뮌스터대 경제학 박사
1973~85년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1989년 국민은행 이사장
1989~90년 보건복지부 장관
1990~92년 청와대 경제수석
11·12·14·17대 국회의원

-도대체 지금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돼 있는 것인가요?
“경제정책의 최고 책임자부터 중간 관리자까지 상황 인식을 잘못한 결과예요. 도대체 747 공약이 뭡니까? 아무리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그런 이야기를 했더라도 집권한 뒤 무리라는 점을 솔직히 인정하고 진즉 궤도를 수정했어야지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지난해 7월부터 국제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져들었습니다. 수출 의존도가 높고 자본시장이 개방된 한국 경제가 홀로 어쩔 수 없다는 점은 경제를 조금 아는 사람이라면 다 아는 사실입니다. 게다가 외환위기 이후 양극화가 심화돼 중산층 이하 계층은 소비 여력이 없어요. 소비 여력이 없으니 내수가 신장되지 않고, 내수 신장이 없으니 기업들이 투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안 되는 겁니다. 투자와 소비 전망이 보이지 않는 판에 세계 경제 상황마저 암담한데 7% 성장을 달성하겠다는 정책이 과연 합리적인가요?”

인터뷰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 #우리 경제정책 시대 변화 못 읽어 … 먼저 상황 인식부터 정확히 해야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다

경제팀, 자리가 아닌 사람 문제

-그래서인지 MB정부 출범 보름 뒤 6% 내외, 하반기 경제운용계획에선 4%대 후반으로 성장률 전망을 낮췄습니다.
“성장률 전망만 낮추면 뭐 합니까? 기조는 그대로인데. 경제정책 책임자는 병을 치료하는 의사와 같아요. 대통령은 병원장이고. 의사가 처음에 환자에 대한 진단을 잘못하면 처방이 제대로 나올 수 없어요. 병원장이 여러 의사를 거느리며 환자를 치료하는데 어느 내과의사가 오진하면 그 의사를 딴 데로 보내야 할 텐데 그걸 하지 않고 자꾸 변명하니까 더 꼬이는 거죠. 환율 파동이 바로 여기서 시작된 거예요.”

-요즘 환율은 주가지수보다 더 큰 폭으로 요동칩니다. 오죽하면 ‘환율보다 환율정책이 더 불안하다’는 말이 나올까요.
“2004년엔 세계 경제도 좋았지만 수출이 30% 넘게 증가했고, 그 이후에도 수출증가율이 한 자릿수로 떨어진 적이 없어요. 우리가 900원대 초반 환율을 갖고서도 그만큼 수출할 수 있었는데, 이 정부 들어 갑자기 원화 가치가 너무 빨리 절상되었다는 이야기를 시작한 것 아닙니까? 그래서 원화 가치가 떨어져 환율이 높아지는데 국제유가와 원자재 가격이 뛰고 수입단가가 높아져 물가에 문제가 생기고…. 그러자 다시 환율을 방어한다며 기획재정부 장관과 한국은행 총재가 외환을 풀어서라도 환율을 안정시키겠다고 공개 선언한 것 아닙니까? 그러니 환율이 요동칠 밖에요. 747 공약대로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로 간다면서 환율을 끌어올린 것은 더욱 이해할 수 없어요. 지난해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인데 전 세계 5000만 명 이상 인구를 가진 국가에서 일곱 번째로 높은 나라예요. 이 정도면 체력을 길러서, 경쟁력을 높여 원화가치 절상을 통해 국민소득을 높여야 합니다. 일본과 독일도 그런 식으로 3만5000달러까지 올라간 거지 GDP(국내총생산) 물량을 늘려 달성한 게 아니거든요. 지난해 국민소득이 2만 달러였는데 이제 환율이 올랐으니 1만5000달러대로 내려온 것 아닌가요? 말도 안 되는 747 공약을 내걸고, 한동안 실현 가능한 것처럼 이야기하고. 정책결정 과정에서 인식의 갭이 길면 코스트가 커질 수밖에요. 정부가 출범한 지 8개월이 다 돼가는 데도 아직 이런 상황을 분명하게 파악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 결과 국민에게도, 대외적으로도 신뢰를 잃었고…. 요즘 외신들이 한국 경제에 대해 자꾸 좋지 않게 쓴다고 정부가 발끈하는데 다 우리 정부가 자초한 거예요.”

-정부는 대외환경이 나빠서 그렇지 정책 잘못이 아니라고 합니다. 7월까진 국제유가가 그렇게 오를지 몰라서, 요즘은 큰 집(미국)에 불(금융 쓰나미)이 나서 그렇다고 하는데요.
“자꾸 말을 바꾸면서 잘못한 게 없다는데 뭐라고 하겠어요. 또 병원장이 그 의사가 잘한다며 감싸고. 경제정책의 책임자가 본인을 위해 대한민국 경제가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곤란하지요. 본인의 정책에 따라 경제에 문제가 생기면 형사적 책임이야 없다고 해도 도덕적으로 책임지고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고 봅니다. 요즘 경제부총리제 도입이 거론되는데 자리보다 사람이 누구인지가 더 중요합니다. 기본적으로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서 핵심은 청와대예요. 머리가 작동하지 않으면 팔다리가 움직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니까요.”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이렇게 오래, 큰 파장을 몰고 올 줄은 전문가들도 대부분 예견하지 못했습니다.
“그전부터 자주 써온 말이 ‘세 가지 화(化)자 돌림’이 자본주의 경제를 어렵게 만들 거라는 거예요. 바로 ‘규제완화·자유화·민영화’입니다. 효율이 있는 분야에서 하는 건 괜찮은데 무조건 해야 한다는 발상이 문제를 일으킵니다. 이번 사태도 결국 미국의 금융감독 체계가 자꾸 축소되면서 투자은행이 어느 곳에서도 감독을 받지 않게 되어 버린 결과 아닙니까? 실물과 상관없이 따로 노는 돈 자체가 상품이 돼 90년대 초 400개였던 헤지펀드가 1만 개에 육박하고 거래금액이 2조 달러에 이르렀는데도 말이죠.”

‘세 가지 화(化)자 돌림’ 맹신 마라

-MB노믹스 자체가 문제인가요? 강만수 경제팀의 정책 잘못인가요? 왜 유달리 한국 금융시장이 이렇게 불안정합니까?
“관료들이야 자리를 보전해야 하니까 참여정부에서 이 목소리 내다가 MB정부에선 다른 목소리를 낸다고 칩시다. 하지만 적어도 장관, 그 윗선에선 실상을 철저하게 파악해야 하는데 이게 문제예요. 우리나라 경제정책이 저지르는 가장 큰 오류는 시대의 변화를 못 읽는다는 겁니다. 사람도 변하고, 환경도 변했는데 옛날에 배운 것만 갖고 되겠어요. 우리나라에서 지난 20년 가까이 경제원론 강의 한번 들어본 사람이면 시장경제 원리를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이른바 신자유주의로 ‘무조건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면 된다’고들 하는데, 특히 정치인들이 그러는 것은 스스로 세계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전혀 모른다고 인정하는 겁니다. 시장원리대로 하자면 오늘날 미국발 금융 쓰나미에도 내버려 둬야지 왜 정부가 간섭합니까? 자본주의 경제의 발상지 영국에서조차 왜 문제가 된 은행을 국유화하겠어요.”

-정부·여당은 그래도 금융시장 규제 완화와 자본시장 통합, 금산분리 완화 방안을 예정대로 추진할 방침인데요.
“우리가 IMF 사태를 겪으며 투입한 공적자금만 160조원입니다. 산업은행에 투입한 자금까지 더하면 200조원에 이르고요. 그렇게 해 기업도, 금융기관도 살린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 다음 민영화 과정은 이해가 안 가요. 은행을 민영화한다는 데 왜 (금산분리를 완화해) 재벌에 찾아줍니까? 일반 공모를 하면 되잖아요. 이번 금융사태를 겪고 나면 세계 금융질서가 다른 상태로 형성될 것입니다. 이미 IMF는 이번 사태에 기능을 할 수 없는 기관이 되어 버렸거든요. 민간부문의 국제금융이 너무 커졌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내년은 우리나라 성장률이 3%대로 예상되고 실업과 환율 급등에 따른 물가를 걱정해야 하는 판 아닌가요? 투자은행을 육성하고, 금융산업을 어떻게 하는 문제는 국제 금융질서가 어느 정도 확립된 뒤 생각해도 늦지 않아요. 지금은 그런 것 신경 쓸 때가 아닙니다.”

-규제완화 정책의 큰 방향과 구체적인 방안을 놓고 기업과 일반 국민 간 온도 차가 느껴집니다.
“규제를 완화하면 경제가 잘된다고 하는데, 물론 시대에 맞지 않는 규제는 철폐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규제까지 없애 달라는 게 기업의 생리거든요. 과거 지금보다 규제가 훨씬 많았어도 기업들은 투자를 열심히 했어요. 기업들은 돈이 되는 것이면 어디든 쫓아갑니다. 요즘 외환위기 이전의 기업 행태가 재현되는 조짐이 보여요. 중소기업 고유 업종이 없어지자 과거 문어발식으로 갖고 있던 것을 재생시키는 곳도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우리 사회는 조화를 이루기 힘들어요.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자본주의는 안정적인, 정상적인 발전을 하기 어렵기 때문에 시장 메커니즘에만 맡겨선 안 됩니다. 보이지 않는 손에만 맡기지 말고 보이는 손, 정부가 그런 노력을 해야 합니다. 진정으로 규제완화를 하려면 대통령이 기업더러 투자하라는 소리부터 하지 말아야 해요.”

-전국적으로 미분양 주택이 16만 채에 이르는데, 정부는 그린벨트 풀어 주택 500만 채를 공급하겠다고 합니다.
“상황 인식이 잘못된 거죠. 과거와 달리 요즘은 건설경기를 일으킨다고 성장에 별 기여도 못해요. 1990년 분당·일산에 신도시 건설할 때하고는 다릅니다. 전체 경제 규모가 커져서 그래요. 경제정책 책임자는 행정 능력도, 경제 지식도 갖춰야 하지만 예술가적 자질이 필요합니다. 현 경제팀은 정책을 펴는데 전략과 전술의 개념을 모르는 것 같아요. 전략에 따라 전술을 바꿔나가야 하는데 말입니다. 어찌 보면 할 말이 없으니 그런 일이라도 벌여야 일하는 것처럼 보일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파트 값이 떨어지고 부동산담보대출이 부실해지면 한국판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닥치는 것 아닌가요?
“그 점은 미국과 다르다고 봐요. 미국에선 자기 돈 20%만 있어도 모기지로 집을 살 수 있는데, 우린 그 정도는 아니잖아요.”

국민연금 증시 개입 외국인만 신나

-감세정책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합니까? 종합부동산세 완화 방안을 놓고선 당정이 갈등을 빚고 야당이 반대하는데요.
“우리나라 조세부담률 22%는 낮은 수준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조세부담률을 낮춘다고 경기가 살아날까요? 조세수입 구조로 볼 때 소득세율 인하는 서민과 별 관계가 없어요. 법인세도 기업 실적이 나쁘면 세금을 내지 않기 때문에 인센티브가 못 됩니다. (내년 예산안을 보면) 세율을 낮춰도 세 부담은 줄어들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잖아요. 종합부동산세는 이론상 도입해선 안 될 세금을 정치적으로 억지로 한 겁니다. 정권이 바뀌었으니 없애려 들 수 있는 거죠.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기 위해 도입했는데 목적한 대로 되었으면 그만 거둬야지요. 야당에서 종부세 대상 2%만 혜택을 보고 98%는 혜택을 보지 못한다고 하는데 그 논쟁은 의미가 없어요. 98%는 손해 볼 게 없거든요.”

-이명박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은 어떻게 들으셨나요?
“방송을 한다기에 엉뚱한 발상을 했구나 생각했어요. 노태우 대통령 시절에도 몇 차례 하다가 그만두었는데 제가 몇 차례 말씀 드렸어요. ‘그런 방송 하려면 그만두세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라고. 국민의 실생활과 관련 없는 이야기만 하는데 누가 듣겠어요. 대공황 때 미국 뉴욕시장 라가르디아처럼 일자리 구하느라고 늦도록 집에 돌아오지 않는 부모 대신 어린 아이들을 위해 동화를 읽어주고 자장가를 틀어준다면 모를까. 무턱대고 루스벨트 대통령 흉내 낼 게 못 돼요. YS 대통령 초기 루스벨트 대통령 잘못 흉내 내 ‘신경제 100일 계획’ 추진했다가 과잉투자와 경기과열 불러 IMF 사태의 단초가 된 겁니다.”

-그렇다면 지금 정부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먼저 상황 인식부터 철두철미하게 해야 합니다. 미화하려고도, 쓸데없이 비관하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를 국민에게 보여주라는 겁니다. 그런데 최근 문제가 된 발언 한두 가지를 들어볼까요. 장관이 은행장들 모아 놓고 공개적으로 해외자산 팔라고 하니 외국인들이 ‘그 정도냐’ ‘돈이 없구나’라고 생각하지 않겠어요? 곧바로 환율이 출렁거리며 올라갔지요. 그러자 또 뭐라고 했습니까. 이번에는 수출기업들이 달러를 원화로 바꾸지 않고 갖고 있다며 찾아다니며 팔라고 했잖아요. 어디 그게 상식적으로 할 이야기입니까? 비밀리에 부탁한 것도 아니고. 이러니 외국인들은 ‘한국이 정말 달러가 부족하구나’라고 생각할 것 아닙니까. 대통령이 새로운 국제 금융기구가 필요하다고 역설하지만 그게 다른 나라 지도자한테 어디 먹혀듭니까. 경제가 좋지 않을 때일수록 어려운 계층에 애정을 쏟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일자리 창출도 이 쪽에 초점을 맞춰야 하고요.”

-주가는 계속 떨어지는데 국민연금이 개입해 주식을 사들이자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국민연금의 주식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은 말도 안 됩니다. 더구나 한편으론 2060년께 연금이 고갈된다고 하면서. 말 그대로 국민의 노후생활안정기금인데 철저하게 안정적으로 관리해야지요. 그렇지 않아도 지금 외국인들이 빠져나가는데 국민연금이 받쳐주면 외국인들이 팔고 떠나기가 더욱 쉬워져요.”

-이러다가 ‘제2의 외환위기’가 오는 것 아니냐고 걱정합니다.
“우리가 IMF 관리체제를 겪고 10년이 지나면서 기업의 재무구조가 월등히 좋아졌어요. 100%도 안 되는 부채비율에 유보금액도 여유가 있는 기업이 많아요. 금융시장이 불안정해 영향을 받겠지만 우리 경제의 기초는 흔들리지 않을 거라고 봐요. 물론 중소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어렵겠지만.”

양재찬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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