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젠 ‘D의 공포’에 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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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본래 영화는 불황에 강한 산업이다. 다른 공연이나 스포츠·여행 등 여가활동에 비하면 훨씬 돈이 적게 들고, 경제가 어려울수록 불안한 현실을 잊기 위해 영화관을 찾는 사람들이 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영화산업마저 움츠릴 정도로 최근 미국에 불어닥친 경기침체 한파는 심상치 않다. ‘R’(Recession·경기 후퇴)의 공포가 이제 ‘D’(Deflation·디플레이션)의 공포로 접어들었다는 진단도 나온다. 디플레이션은 경기 둔화 속에 물가가 장기적으로 광범위하게 떨어지는 현상이다.


자산 가격이 떨어지면 소비자와 기업은 가격이 더 떨어질 것을 기대하고 지출과 투자를 줄이고 이것이 다시 가격 하락으로 이어진다. 이런 악순환이 반복된 게 1930년대 대공황이나 1990년대 일본의 장기 불황이다.

최근 경기 침체의 무게감은 국제 유가의 움직임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7월 배럴당 140달러를 넘어서며 정점에 달했던 국제 유가는 최근 반토막이 났다. 무엇보다 경기 침체로 석유 수요가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 결정적이었다. 인플레의 위험은 덜었지만 이제 디플레의 함정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 됐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에서도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도널드 콘 연준 부의장은 15일 “상품가격의 하락이 급격한 물가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재닛 옐렌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 총재도 최근 “노동과 상품에 대한 급격한 수요 감소가 물가상승률을 안정적인 선 아래로까지 떨어뜨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도 “미국이 1982년 이후 최악의 경기 후퇴에 직면했다”며 디플레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전했다. 주택시장의 침체가 지속되는 가운데 실업률이 급상승해 이것이 다시 연체율 증가와 소비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고혈압만큼 저혈압이 건강에 위험하듯 디플레이션도 인플레이션만큼 경제에 해롭다. 일단 발생하면 악순환이 반복되는 데다 정책 수단의 ‘약발’도 잘 듣지 않아 더 위험하다는 분석도 많다. 이 때문에 벤 버냉키 FRB 의장은 “디플레 위험이 생기면 헬리콥터로 돈을 뿌려서라도 막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미국 정부와 FRB가 디플레를 막기 위해 전방위로 나설 것이라는 게 현지 언론의 전망이다. 뉴욕 타임스(NYT)는 최근 의회가 1500억 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마련하고 있다면서 “지금 빚이 늘어나는 건 문제가 아니라는 게 워싱턴의 컨센서스”라고 전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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