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 2위, 일본도 심상찮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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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일 일본 도쿄의 중심가 유라쿠초(有樂町)의 대형 가전제품 판매장 빅크가메라. ‘20% 세일 행사’가 한창이다. 시가 5만 엔 안팎의 미니 노트북이 단돈 100엔에 나와 있다. 인터넷 상품과 결합한 상품이지만 ‘폭탄 세일’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행인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지는 못했다. 몇몇 사람이 관심을 보였지만 막상 지갑을 여는 이는 없었다.

같은 날 오후 신주쿠(新宿)의 한 대형 수퍼마켓. 장바구니를 들고 매장을 찾은 주부 와타나베 마사코(39)는 “물가가 너무 올랐다”며 “1만 엔짜리 한 장을 들고 가도 살 게 없다”고 말했다.

미국발 금융위기는 일본 소비자들의 지갑을 다시 닫게 하고 있다. 주식값이 폭락하고 기업실적이 나빠지는 데다 물가는 가파르게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7, 8월 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2.4%씩 올랐다.

소비가 줄면서 당장 유통업체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업체마다 값이 싼 자체 브랜드(PB) 상품을 속속 내놓고 있지만 그래도 물건이 잘 팔리지 않는다. 대형 수퍼마켓 체인인 다이에는 18일부터 ‘힘내라 일본! 알뜰 가격’ 행사를 시작했다. 백화점들은 연말 세일을 앞당길 예정이다.

기업 사정도 악화되고 있다. 일본 기업의 상징으로 불리는 도요타의 올 3분기 영업이익은 40%가량 줄어든 것으로 추정된다고 일본 언론들이 보도했다. 소니·샤프·도시바 등 전자업계도 예상 이익이 크게 줄었다. 일본 자동차 업체들은 미국에서 대형차 라인 증설을 중단했다. 대신 소형차 생산 비중을 확대하고 있다. 불황의 터널에 들어갈 각오를 하고 있는 것이다. 건설회사는 신축 아파트 판매가 크게 줄면서 부도 도미노의 공포에 휩싸여 있다. 의류 소비 감소에 따라 봉제회사인 레나운은 내년 2월까지 사원 400명을 감원할 예정이다.

한국이 원화가치가 떨어져 고통인 반면 일본은 엔화 가치가 너무 올라 걱정이다. 긴키(近畿)대 이지마 다카오(飯島高雄) 교수는 “엔고(高)는 일본의 수출 경쟁력을 떨어뜨려 주가 폭락으로 연결되고 있다”고 말했다. 엔고는 금융시장의 혼란을 불렀다. 10일 도산한 야마토(大和)생명보험은 미국발 금융위기의 일본 상륙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은행업계 관계자는 “야마토생명이 쓰러지면서 금융시장의 돈 흐름도 콱 막혔다”고 말했다. 일본은행은 야마토생명 도산 하루 전부터 주일 한국 은행들에도 “서울 본사에 연락해 자금 부족 위기에 대비하라”고 요청하는 등 비상에 돌입했다. 일본은행은 매일 5000억~1조 엔의 긴급 자금을 금융시장에 쏟아붓고 있다. 그러나 일부 지방은행엔 공적자금 투입이 불가피한 것으로 보고 있다.

개인투자자의 손실도 눈덩이처럼 불고 있다. 50대 회사원은 “10년 불황이 끝나고 경기가 좋아지면서 지난해까지 많은 사람이 주식 투자에 나섰다”며 “그러나 결국 상투를 잡고 막대한 손실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손실을 본 투자자들의 펀드나 주식계좌 해지도 잇따르고 있다. 해외 증시에 투자하는 펀드 잔액은 지난달 말 현재 30조 엔 아래로 줄었다. 해외펀드 잔액이 30조엔을 밑돈 것은 1년7개월 만이다.  

도쿄=김동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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