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치어 덴마크 대법원장 “청렴한 사법부로 국민 신뢰 얻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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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덴마크 국민이 사법부를 신뢰하는 것은 공공 행정 분야가 청렴한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용훈 대법원장의 초청으로 방한한 토어번 멜치어(68·사진) 덴마크 대법원장은 16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자국민의 사법부 신뢰 수준이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멜치어 대법원장은 “지난해 실시한 법원의 여론조사에서 국민 94%가 법원에서 받은 서비스에 만족하며 법원 판결을 신뢰한다고 답했다”라며 “패소 판결을 받은 사람들도 절대 다수가 ‘부당한 처우를 받지 않았다’라고 답했다”라고 전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공공행정에 대한 높은 신뢰가 법원에 대한 믿음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그는 “덴마크 공직사회에는 뇌물수수나 부정부패가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공직자가 공복이라는 의식이 강한 데다 급여수준이 높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시민들이 ‘법관은 정치로부터 독립적이고 부패하지 않으며 편견이 없다’라고 믿는다는 점도 들었다.

덴마크는 2007년 사법개혁으로 상고허가제를 전면 시행했다. 다른 국가와 달리 대법원이 아닌 독립적인 상소허가위원회를 둔 게 독특하다. 위원회는 대법관과 1심 판사, 2심 판사, 변호사, 교수 등 5명으로 구성된다. 배심제와 참심제를 모두 채택하고 있기도 하다.

멜치어 대법원장은 “상고허가제로 대법관 1인당 연간 처리 사건 수가 30건에 불과하다”라고 밝혔다. 업무 부담이 적어 충실한 판결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그는 한국에선 대법관 1인당 2000여 건을 처리해야 한다는 얘길 듣고 놀랐다고 말했다.

배심제와 참심제에 대해선 “국민이 직접 재판에 참여함으로써 사법절차의 투명성이 높아지고 신뢰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라며 “실제 제도를 시행해 보니 단점보다는 장점이 더 많더라”라고 예찬론을 폈다.

판사와 참심원 간에 양형을 놓고 의견이 다를 경우 피고인에게 유리한 쪽으로 판결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언론과의 소통을 중시한다는 그는 한국의 공보판사제도를 덴마크에서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출신인 멜치어 대법원장은 1991년 대법관이 됐으며 2004년 대법원장에 임명됐다. 70세 정년이 되는 2010년까지 대법원장 직을 수행하면서 사법개혁 후속작업을 진두지휘한다. 

조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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