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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개 은행 CEO 부른 폴슨 미 재무 “이 서류에 서명 않고는 못 나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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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13일(이하 현지시간) 오후 3시 미국 워싱턴 재무부 회의실. JP모건체이스, 웰스파고 등 미국 9개 주요 은행 최고경영자(CEO)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기다리고 있던 헨리 폴슨 미 재무장관이 그들에게 서류 한 장씩을 나눠줬다. 은행 지분 매입 프로그램에 따라 공적자금을 지원받겠다는 확인서였다. 폴슨 장관의 무뚝뚝한 말이 이어졌다. “이 서류에 서명하기 전에는 회의실을 나갈 수 없습니다.”

미국 정부가 2500억 달러를 들여 은행 지분을 사들이기로 결정하기까지는 이처럼 숨어 있는 한편의 ‘관치 드라마’가 있었다. 뉴욕 타임스(NYT)는 주요 은행 소식통들의 말을 통해 13일 오후 폴슨 미 재무장관의 9개 은행 CEO 긴급 소집과 ‘최후 통첩’ 등 긴박했던 상황을 재구성해 15일 인터넷판에서 보도했다.

폴슨 장관이 은행 CEO들에게 ‘초대 전화’를 걸기 시작한 것은 일요일인 12일 오후. CEO들은 정부의 새로운 구제책에 대한 설명을 듣거나 시장 안정 조치에 대해 자발적 참여를 요청받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그들을 기다린 것은 다음날 발표될 은행 지분 매입건이었다.

9명 CEO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가장 크게 반발한 이는 웰스파고의 코바체비치 회장이었다. 웰스파고는 주택담보대출 관련 부문이 큰 문제가 되지 않았고, 구제금융도 필요치 않다는 것이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케네스 루이스 회장 역시 거부감을 보였다. 루이스 회장은 BoA가 막 100억 달러를 자력으로 조달했다는 사실을 내세웠다. 반면 JP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은 재빨리 정부 제안이 매력적이라고 응수했다. 어렵사리 일본 자본을 유치한 모건스탠리의 존 맥 CEO는 말을 아꼈다.

CEO들에겐 공적자금이 투입되면 최고경영진의 보수가 제약받게 된다는 점도 고민거리였다. 웰스파고의 코바체비치 회장이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와코비아 인수를 성공적으로 마칠 경우 퇴직 보너스로만 4300만 달러를 챙길 수 있다. 그러나 BoA의 루이스 회장이 제동을 걸었다. 그는 “경영진 보수 문제 때문에 이 논의가 가로막힌다면 우리는 모두 미쳤다는 말을 들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후로도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정부 개입으로 경영권에 제약이 가해질지, 정부의 우선주 매입이 기존 주주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등이었다. 분위기를 다잡은 이는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과 티모시 가이스너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였다. 이들은 이번 금융위기를 막지 못하면 아무리 튼튼한 은행이라도 견디기 어려워질 것이란 점을 강조했다. 오후 6시30분. 9명의 CEO는 결국 정부안대로 모두 서명했다. 회의 시작 후 3시간30분 만이었다.

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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