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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 도장만 받으면 OK … 28만 명이 농사 안 짓고 직불금 챙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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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감사원의 감사 결과 ‘쌀 소득 직불금’은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돼온 것으로 드러났다.

2006년 직불금을 받은 99만8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8만 명이 직접 농사를 짓지 않고 직불금만 챙겼다. 같은 농지에 대해 지주와 실제 경작자가 이중으로 수령한 경우도 있다. 반면 지주의 반대로 실제 농사짓는 사람이 직불금을 신청하지 못하는 사례도 많다.

감사원은 그러나 “농림부가 노무현 정권인 2006년 말 대통령 비서실에 ‘임차인의 의사에 반한 임대인(지주)의 일방적인 직불금 수령은 거의 없다’고 보고했다”고 지적했다.

◆강남구 주민 37명 부당 수령=감사원은 ▶서울·과천에 거주하고 ▶월 소득이 500만원 이상이며 ▶50만원 이상의 직불금을 받은 124명을 상대로 실태조사를 했다. 그 결과 16명은 김포·수원·평택 등 경기도 8개 시·군에서 실제 농사를 짓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108명은 농사와 전혀 상관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 강남구에 주소를 둔 65명도 2749만원의 직불금을 받았다. 하지만 29명은 현지 농업인에게 농지를 임대했고, 8명은 농지를 버려두거나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등 37명이 농사를 짓지 않으면서 직불금을 받았다. 타지에 살면서 전북 익산, 충남 서산·당진, 경기 용인·포천·김포 등 8개 시·군에 있는 농지에 대한 직불금을 받은 사람 367명 가운데 259명이 현지 농민에게 농지를 임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민주당 백원우 의원(左)과 최영희 의원이 14일 서울 서초구청을 항의 방문해 이봉화 보건복지가족부 차관의 쌀 소득 보전 직불금 신청 포기서 사본을 들어 보이며 질문하고 있다. [김형수 기자]


◆같은 땅에 두 번 돈 받아=동일한 농지에 대해 지주와 실경작자가 이중으로 직불금을 받은 경우가 2005년 3200건, 2006년 1970건 등 모두 5196건에 달했다. 이들에게 지급된 직불금은 모두 12억3900만원이다. 농지 소재지가 아닌 주소지에서 직불금을 신청하는 허점을 이용한 것이다.

반면 경기 김포·파주 등 4개 시·군에서 직불금을 신청하지 않은 농가가 1331가구나 됐다. 지주가 직불금을 받기 위해 실제 경작자에게 신청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넣었기 때문인 것으로 감사원은 보고 있다. 지난해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 전국 3200가구를 표본조사한 결과 실제 농업인 중 24%가 직불금을 받지 못했다. 감사원은 “쌀 생산농가의 소득 감소를 보전하기 위한 쌀 소득 직불금이 실제 농업에 종사하는 농업인 이외에 농지를 소유한 비농업인에게 부당하게 지원되고 있다”고 결론 내렸다.


◆“모호한 기준이 탈법 부른다”=‘쌀소득 등의 보전에 관한 법률’은 1998~2000년 논농업에 이용된 농지를 실제 경작하는 농업인에게 직불금을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쌀 시장 개방에 따른 피해 농업인’으로 대상을 한정하지 않고 있다. 이런 허점 때문에 2006년에만 농지 4만1600ha를 새로 취득한 11만5000명이 468억원의 직불금을 받았다. 특히 공무원·회사원 등 다른 직업을 갖고 있어 소득이 감소되지 않는데도 새로 농사를 짓는다는 이유로 직불금을 타내는 경우도 많다.

여기에다 농림부는 2005년 현행 쌀소득직불제로 개편하면서 직불금 지급 상한선(4ha)을 폐지했다. 전업농의 규모를 확대한다는 명분이었다. 그러나 이는 대규모 기업농에 이익이 집중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2005~2006년 44개 농가(법인 11개, 개인농 33명)가 5000만원 이상을 받았고, 이 중 8개 농가(법인 6개, 개인농 2명)가 1억원 이상을 수령했다. 충남에 167ha의 농지를 소유한 A씨의 경우 자산가로 2005~2006년에 2억6000만원의 직불금을 받았다. 직불금 상한제가 있었다면 600만원을 받을 수 있다.

◆허술한 관리=직불금 지급 대상자로 등록하기 위해서는 읍·면·동장이 농지 원부를 확인하고, 농지 원부가 없더라도 이장이 확인서만 떼어 주면 등록할 수 있다. 실제와 다르게 ‘농지이용 및 경작현황 확인서’를 만들어 이장의 도장을 받기만 하면 직불금을 타낼 수 있는 구조다.

농지 소재지가 아닌 주민등록지에서 직불금 지급 대상자를 등록하도록 한 것도 문제다. 도시의 행정기관에서 실경작자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농지가 있는 읍·면·동사무소에 매번 조회해야 한다. 그러나 경북 경주시의 경우 읍사무소 공무원 1명이 31개 마을 1900농가(2000ha)의 직불제 업무는 물론이고 공공근로사업, 지역경제 업무를 맡는 등 담당 공무원이 턱없이 부족하다.

김상우 기자 ,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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