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외교의 수치” 망신 당한 아소 총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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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은 모기장 밖에 놓여 있다(소외됐다).” “일본 외교의 수치.”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하면서 일본을 따돌림한 과정이 알려지면서 아소 다로(麻生太郞·사진) 총리가 궁지에 몰리고 있다. 대미 외교를 가장 중시해 온 일본으로선 상당히 충격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13일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토머스 시퍼 주일 미국대사가 일본 외무성 간부에게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해제 방침을 알린 것은 11일 오후 8시였다. 미국이 공식 발표하기 불과 네 시간 전이었다. 시퍼 대사는 “부시 대통령이 아소 총리와 통화하고 싶어 한다”며 미국의 방침을 전달했다.

외무성 간부는 “급하게 결정해서는 안 된다”며 제지했다. 그러나 시퍼 대사는 오히려 “부시 대통령은 일본의 지적을 모두 알고 있고, 완전히 이해하고 있다”며 일본 측 설득에 주력했다. 그 후 부시 대통령이 아소 총리와 통화한 것은 공식 발표 30분 전인 12일 오후 11시30분쯤이었다. 이미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해제 문서에 서명한 뒤 3시간이나 지났고, 언론에도 보도된 뒤였다. 당시 하마마쓰(濱松)시를 방문해 청년회의소 간부 출신들과 만나고 있던 아소 총리는 연락을 받고 다른 방으로 옮겨 10분 정도 통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라이스 장관과 통화한 나카소네 히로후미(中曾根弘文) 외상이 “당장 이번 주말에 해제가 결정되는 일은 없다”고 장담했던 일본으로선 엄청난 망신을 당한 꼴이 됐다.

이런 내막이 알려지자 일본 정계 일부에선 불만이 터져 나왔다. 주요 7개국(G7)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 워싱턴에 있던 나카가와 쇼이치(中川昭一) 재무금융담당상은 “동맹국인 일본과 사전에 충분히 논의하고 결정했느냐”고 비난조로 말했다.

그럼에도 일본 내에선 아소 총리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요미우리(讀賣)신문은 “일본 외교의 패배”로 규정했다. 니혼게이자이는 “미·일 동맹에 대해 여당 내에서도 불신이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야당인 민주당의 간 나오토(菅直人) 대표대행은 “일본은 모기장의 바깥에 있는 것처럼 내부 사정을 알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아소 총리에게 더 큰 부담은 일본이 우선 해결 과제로 삼아 왔던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가 미·일 동맹에서 뒷전으로 밀려났다는 사실이 확인된 점이다. 일본은 납치 문제를 이유로 대북 제재를 유지하면서 미국의 협조를 계속 요청해 왔으나,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했기 때문이다.

아소 총리는 이를 의식한 듯 13일 “앞으로 협상 과정에서 (납치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 수단을 잃어버린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가와무라 다케오(河村建夫) 관방장관은 “미국의 조치는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첫걸음”이라며 “그 과정에서 납치 문제가 소외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강변했다. 그러나 납치 문제가 미·일 간 공동 의제로 부각될 가능성은 더욱 줄어 아소 총리의 정치·외교적 부담은 커질 전망이다.

도쿄=박소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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