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평화상 아티사리, 30년간 3개 대륙 유혈분쟁 해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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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티 아티사리(71) 전 핀란드 대통령은 2005년 이후 계속 노벨 평화상 수상 후보로 거론돼 온 ‘단골’ 후보다. 그는 북아일랜드, 인도네시아 아체, 코소보, 중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지구촌 분쟁 지역에서 평화를 중재한 경험을 갖고 있는 베레탕 중재가이자 외교관이다. 온라인 도박업체인 패디파워는 올해 아티사리의 수상 가능성을 유력 후보 중 셋째로 높은 5분의 1의 확률로 보기도 했다. 그의 평화상 수상은 핀란드인으로는 처음이다.

국제 평화에 대한 관심은 그의 뿌리에서 시작된다. 그는 1937년 핀란드의 비이푸리에서 태어났지만 이 지역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소련에 넘어가 비보르크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의 가족은 40만 명의 핀란드인과 함께 정든 고향을 버리고 핀란드로 이주했다. 초등학교 교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65년 외교부에 들어갔다.

탄자니아와 유엔 대사 등 핀란드 외교부와 유엔에서 다양한 직책을 맡다가 90년 나미비아의 독립을 중재하면서 유명해졌다. 그 결과 94년 핀란드 최초의 직선 대통령에 선출돼 2000년까지 재직했다. 이 기간 핀란드는 유럽연합(EU)에 가입했다.

2005년 인도네시아 정부와 아체 반군의 평화를 중재한 것은 또 다른 중요한 성과로 꼽힌다. 그의 주도로 핀란드에서 7개월여간 계속된 협상 끝에 정부와 반군은 30여 년간의 분쟁을 끝내기로 합의했다. 이 지역에선 반군과 정부군 간 전투로 지금까지 1만5000명이 사망했다. 2007년에는 이라크 수니파와 시아파 간의 화해를 주선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터키의 EU 가입 문제를 중재하기 위해 뛰어다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중재 인생에 유일한 오점은 코소보다. 핀란드 대통령이었던 99년 세르비아에 나토의 중재안을 받아들이도록 해 코소보 공습을 멈추는 데 일조했다. 그리고 2005년엔 다시 유엔 코소보 특사로 임명돼 코소보의 지위 문제를 해결해 보려 했지만 성과를 보지 못하고 2008년 물러났다. 그 결과 코소보는 러시아와 세르비아의 반발 속에 2월 일방적으로 독립을 선언했다.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은 아티사리 전 대통령의 수상 소식을 듣고 “3개 대륙에서 평화를 중재한 인물은 그가 유일하다”며 “그보다 평화상 수상자로 적절한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인도네시아 대통령도 “그는 해법을 지향하는 인물로 아체 사태 해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지난해 지구온난화 방지와 환경 운동에 힘쓴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과 유엔 정부간 기후변화위원회(IPCC)를 선정해 그동안의 전통에서 다소 벗어났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아티사리의 수상으로 노벨위원회가 평화상은 국제평화 중재자에게 준다는 기존의 전통으로 돌아갔다고 AP통신은 평가했다.

최지영 기자

◆노벨 평화상=평화 정착과 인권 향상 등에 공헌한 사람 또는 단체에 주는 상. 기존 수상자와 각국 정부 관료 및 국회의원, 교수 등으로 부터 후보 추천을 받아 선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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