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마디에 시장 흔들 … ‘저승사자’ 돌아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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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증권시장에서 한 중개인이 이마를 짚으며 울상을 짓고 있다. 세계 금융위기에 대한 공포로 이날 인도네시아 주가는 10% 이상 폭락했다. [자카르타 AP=연합뉴스]

 #1. 8일 오후 기획재정부 국제금융 라인은 바쁘게 돌아갔다. 일부 언론에 난 ‘피치, 한국 은행권 지급 불능 징후’라는 보도 때문이었다. 보도는 즉각 원-달러 환율 상승을 부추기는 쪽으로 영향을 미쳤다. 소동은 다행히 얼마 안 돼 진정됐다. 피치사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고 재정부에 연락을 취해 왔고, 재정부는 곧 해명자료를 언론에 배포했다.

#2. 이날 국내 은행주 주가는 추풍낙엽처럼 떨어졌다. 우리금융(-8.7%)·신한지주(-8.25%)·하나금융지주(-8.7%) 등 대형 은행주들이 추락했다. 전날 국제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가 글로벌 금융위기로 한국 은행들이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한 탓이었다. 무디스가 재무건전성 등급 전망을 ‘안정적(stable)’에서 ‘부정적(negative)’으로 낮춘 부산은행(-10.99%)과 대구은행(-14.47%)의 하락은 더 가팔랐다.

S&P·무디스·피치 등 3대 신용평가사들이 한국 경제의 명운을 쥐고 뒤흔드는 시기가 다시 찾아온 것일까. 11년 전 외환위기 당시 한국 경제에 ‘저승사자’ 역할을 했던 신용평가사들에서 부정적인 코멘트가 나오기 시작했고, 한국 경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신용평가사들은 요즘처럼 경제의 시스템 위험이 높을 때 과도한 위력을 발휘한다. 시장이 불안해할 때 던지는 이들의 부정적 평가는 휘발성이 가위 폭발적이다. 이런 신용평가사의 행태에는 비판이 적지 않다. 예고를 못 하고, 사후 평가만 한다는 것이다. 일이 터지기 직전까지 가만히 있다가 상황이 나빠지면 마치 심판관처럼 나서는 바람에 위기를 증폭시킨다는 지적도 있다. 그럼에도 이들의 평가는 여전히 자본주의 금융 시스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투자지표로 작용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한국 경제는 신용평가사들과 잊을 수 없는 ‘악연’이 있다. 신용평가사들은 환란 발생 전에는 아무런 조치를 않다가 정작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이 시작된 1997년 말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한꺼번에 여섯~열두 단계나 떨어뜨렸다. 한국은 순식간에 투자 부적격 등급으로 곤두박질했다. 외환차입 통로는 막혔고, 터무니없이 높은 가산금리를 물고서야 달러를 구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은행권의 외화 자금난 등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 못지않게 신용평가사들을 상대로 선제적인 상황 설명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주문한다.

 국내 경제주체들이 신용평가사의 진단에 지나치게 휘둘릴 필요가 없다는 분석도 있다. 푸르덴셜투자증권 성병수 애널리스트는 “유동성 문제가 있지만 국내 은행들의 신용등급이 갑자기 외환위기 수준으로 떨어질 정도로 취약하지 않다”고 말했다. 신제윤 재정부 국제업무관리관은 “국가 신용등급은 경제의 펀더멘털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정하는 만큼 현 등급에 부정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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