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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으로 돌아온‘엔화의 유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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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인천 남동 공단에서 진열대 제작 업체를 운영 중인 최모 사장은 요즘 밤잠을 설친다. 은행에서 지난해 12월 초 1년 만기로 빌린 엔화 2억4000만 엔의 상환일이 두 달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당시 엔화 대출금 이자율이 원화 대출보다 2%포인트 낮은 연 3%대여서 잘 빌렸다고 흐뭇해 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완전히 바뀌었다. 대출받을 때 100엔당 840원 하던 원-엔 환율이 1300원대로 뛰었기 때문이다. 최 사장은 “당시 빌린 돈을 원화로 환산하면 20억원인데 지금 환율대로라면 갚아야 할 돈은 33억원이 넘는다”며 “경기도 나쁜데 이런 손해까지 생기니 회사 문을 닫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서울 강남에서 성형외과를 하는 김모 원장도 요즘 엔화 대출 때문에 죽을 맛이다. 2006년 말 100엔당 800원에 10억원을 빌렸는데 원-엔 환율이 오르면서 지금 17억원으로 불었다.

최근 3~4년간 금리가 낮다는 매력 때문에 개인과 기업이 앞다퉈 빌렸던 엔화가 재앙의 부메랑이 되고 있다. 원-엔 환율은 지난해 10월 1일 100엔당 798.9원에서 8일 1395.28원으로 75%나 뛰었다.

문제가 되는 엔화 대출은 2001년 10월부터 2006년 8월까지 폭발적으로 늘었다. 한국은행이 이 기간 외화여수신 규정을 폐지하면서 외화대출에 제한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의 초저금리와 맞물리면서 시중에 엔화 자금이 풍부했다. 2006년 말 기준으로 엔화 대출 잔액은 1조5077억 엔. 그 이후 한은이 외화대출을 제한했지만 올 6월 말 대출 잔액은 1조4040억 엔이나 된다. 기업은 빌린 돈으로 투자를 하거나 운전자금으로 썼다. 의사들은 대출받은 돈으로 의료 장비를 구입했다. 일부는 엔화로 대출받아 부동산을 사들이는 바람에 집값을 끌어올린 하나의 원인이 됐다.

문제는 당시 개인들이 빌린 돈은 대부분 ‘3년 거치, 5년 분할상환’ 조건이어서 올해부터 갚아야 할 액수가 많다는 것이다. 서울 강남에서 대출 중개를 하는 한 업자는 “주로 외국계 보험회사에서 엔화 대출을 알선하고 보험 상품을 판 게 많았다”며 “엔화 대출로 부동산 투자를 한 사람들은 집값도 떨어져 이중고를 겪는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1년 후 갚는 조건으로 빌린 뒤 상환을 연장하고 있지만 최근 환율이 급등하면서 고민이 커졌다. 상환을 연기해도 환율 오름세가 지속되면서 손해가 더 늘고 있기 때문이다. 한은은 올 1월부터 엔화를 빌린 기업이 환차손 부담을 덜도록 운전자금의 상환기간을 1회에 한해 1년 연장하는 것을 허용했다. 올 8월 원-엔 환율이 100엔당 990원 할 때 상환을 1년 연기한 중소 통신업체 김모(48) 사장은 “그때보다 환율이 더 뛰어 걱정만 커졌다”고 말했다.

금융사에는 엔화 대출을 받은 사람들의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삼성생명 FP센터 박필준 팀장은 “환차손을 피할 방법을 묻지만 헤지(위험회피)를 한 대출은 거의 없어 대부분 큰 손해를 떠안아야 할 처지”라고 말했다.

엔화 대출을 국내 대출로 갈아타려고 해도 금리가 너무 차이가 나서 엄두를 내지 못한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일단 올해 상환을 연기한다 해도 내년에는 빚을 갚아야 하는데 환율 상승세가 지속하면 기업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종윤·김영훈·장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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