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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교수의 국토박물관 순례] 18. 화순 쌍봉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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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 쌍봉사는 천 년 고찰로 우리나라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단아하고 품위있는 조용한 산사다. 왼쪽 건물은 최고 명물로 대웅전이라 불리는 삼층목탑이다. [조용철 기자]

▶ 조각이 섬세하고 아름답다는 평을 받는 철감선사부도(左)와 돌거북의 조각이 생동감있게 표현된 부도비.

근래에 들어와 외국 박물관 관계자들의 한국방문이 부쩍 잦아지고 있다. 올 10월엔 서울에서 국제박물관대회(ICOM)가 열리니 그만큼 우리 문화유산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얘기인데 이들의 방문이 박물관에만 머물지 않고 멀리 답사여행을 다녀오는 스케줄도 갖고 있어 새삼스러운 바가 있다. 이달 하순엔 영국의 대영박물관 회장인 존 보이드 경과 전 관장인 로버트 앤더슨 박사가 한빛문화재단(회장 한광호) 초청으로 일 주일간 우리나라를 방문한다. 이들은 명지대와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강연회를 열 예정이다.

이달 27일 열릴 명지대 강연회에선 보이드 경이 '유럽인의 시각에서 본 한국문화'를, 앤더슨 박사는 '21세기 사회에서 박물관의 역할'을 발표한다. 그리고 이들 일행은 이틀간 고적답사를 갖고자 나에게 그 길라잡이를 요청해왔다. 나는 흔쾌히 응하면서 ① 경주의 신라문화, ② 안동 지역의 건축, ③ 백제지역의 고적, ④ 남도의 산사(山寺) 등 4개의 답사코스를 제시하고 그 중 하나를 선택해 달라는 질문서를 보냈다.

앤더슨 박사는 몇 차례 한국을 다녀갔지만 보이드 경은 초행인지라 나는 당연히 경주를 선택할 줄로 알았다. 그런데 두 분 모두 남도의 산사를 답사하고 싶다고 회답해왔다. 그리하여 답사 세부일정표를 짜는데 그날이 공교롭게도 부처님 오신 날이어서 절구경을 제대로 못할 것 같아 큰 걱정이다.

그래도 내게는 믿는 구석이 있으니 그것은 화순 쌍봉사만은 이들을 절대로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다.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쌍봉리, 쌍봉산 깊은 산중에 자리잡고 있는 이 천년 고찰은 우리나라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아늑하고 단아하고 품위있는 조용한 산사다.

우리나라 단일 석조물 중 가장 조각이 섬세하고 아름답다는 평을 받고 있는 철감(澈鑑)선사 부도(국보 57호)와 9세기 비석 중 돌거북의 조각이 가장 생동감있게 표현된 부도비(보물 170호). 이 두 개의 유물이 있는 한 쌍봉사의 미술사적.문화사적 위상은 절대로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또 국가문화재로 아직 지정되지 않았지만 명부전에 모셔져 있는 목각 시왕상(十王像)은 조선후기 목조각의 대표작이라 할 명품 중의 명품이다. 이뿐 아니라 이 절의 극락전은 주변 공간경영이 너무도 현대적이다. 통일신라시대에 쌓은 돌축대의 가지런한 어긋쌓기도 일품이고 극락전으로 오르는 계단이 아주 낮고 비스담한 기울기(slope)를 갖고 있는 것에 눈있는 건축가들은 혀를 내두른다.

그런 중 쌍봉사의 최고 명물은 이른바 대웅전이라 불리는 삼층목탑에 있었다. 삼국시대 목탑양식을 가장 충실하게 반영하는 건물로 신라 황룡사 구층목탑의 구조를 상상 복원할 때 그 기준작으로 되고, 일본의 최고 목탑인 호류지(法隆寺) 오중탑(五重塔)의 원조격이 되는 목탑이었다. 그런데 이 건물은 1984년 5월 부처님오신날 며칠 전에 완전히 불타 없어졌다.

이 불타버린 쌍봉사 삼층목탑에 대해 나는 할 얘기가 너무도 많다. 지금은 모든 사정이 달라져 쌍봉사 가는 길이 너무도 편하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비포장 흙길을 털털거리는 시외버스로 한참을 가야 했고, 쌍봉리 마을부터 쌍봉사까지 십리길은 큰 차가 들어가지 못하는 좁은 농로뿐이어서 한 시간을 걸어가야 했다. 우리나라, 특히 남도의 사찰들에 시주다운 시주가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말 무렵이다. 84년 당시 쌍봉사에는 비구니스님 두 분이 절을 지키고 있었는데-결례되는 말씀인지 모르지만-당시 쌍봉사는 화순군의 극빈자 지원금을 받고 있었다고 한다. 그날의 화재도 부처님 오신 날 행사준비를 위해 스님들이 시주를 구하러 출타한 중에 일어난 재앙이었다.

나는 이 삼층목탑을 본 적이 없다. 내가 쌍봉사에 처음 간 것은 삼층목탑이 불탄 그 해 가을, 내 친구인 안병욱(가톨릭대) 교수의 아버님 회갑잔치에 갔다 들른 것이었다. 안교수는 이곳 화순군 하고도 이양면 태생으로 이양초등학교를 다녔다. 그는 초등학교 6년 동안 쌍봉사로 소풍다녔다고 하니 그의 유년시절의 추억이 고스란히 여기 서려있다. 그래서 그는 중앙일보에서 기획했던 '내 마음속의 문화유산 셋'에서 무려 그 두 개를 쌍봉사 삼층목탑과 철감국사 부도로 꼽았다.

당시 안교수는 독일에 연수 중이었는데 부친 회갑을 위해 일시 귀국해 곧장 화순으로 내려갔고 나는 겸사겸사 그의 고향집을 방문한 것이었다. 그는 나를 반갑게 맞으며 먼저 안방에 들어가 아버님께 인사드리게 하고 마당으로 나오면서 내게 고맙다는 뜻으로 "어떻게 이렇게 먼 데까지 다 왔어"라고 인사말을 대신했다. 그래서 나는 그가 덜 미안해 하라고 "쌍봉사 삼층목탑이 불타버려서 그것도 볼 겸 왔지"라고 말을 돌렸다.

순간 안교수는 놀라움과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뭐야! 그 대웅전이 불탔단 말야." "정말이야." "언제." 그는 독일에 있었기에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엄니! 쌍봉사 대웅전이 불탔다며요." "왜 그걸 말 안 해줬어요." "그렇다면 가봐야지." 그리고는 곧장 나와 함께 쌍봉사로 갔다. 아, 그때 그가 허망해 하며 절집 한쪽에 쌓아둔 불탄 기둥더미를 마치 자기 집이 탄 것처럼 매만지던 그 애잔한 모습을 나는 잊지 못한다. 그때부터 나는 문화유산은 그것을 사랑하는 자의 것이다라는 말을 자주하고 있다.

그러나 다행히도 쌍봉사 삼층목탑은 실측설계도면이 있어 이태 만인 86년에 복원되었다. 이후 쌍봉사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돌담도 새로 둘러지고 찻길도 확장되었고 주차장도 넓게 마련되었다. 이른바 대대적인 중창불사가 이루어졌는데 다른 절집 같은 속기나 허장성세가 없고 예스럽고 품위있는 산사의 향기를 간직하고 있다. 그 깔끔하면서도 고담한 멋을 다치지 않은 것은 오직 주지인 관해(觀海)스님의 높은 안목 덕이었다. 몇해 전 부처님오신날 답사객들과 함께 쌍봉사에 갔을 때 대웅전 앞마당에 가지런히 걸려있는 소담한 연등행렬이 얼마나 예뻤는지 모두들 감탄해 마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대영박물관 일행들을 이끌고 쌍봉사로 자신있게 떠날 차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10여년 전, 찻길이 없어 쌍봉리 학포정(學圃亭)부터 십리 길을 걸어갈 때 산굽이 세 개를 돌면 쌍봉산 기슭에 파묻히듯 자리잡은 쌍봉사가 삼층목탑부터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다가오는 반가움과 시원한 눈맛이란 동양 미술사 연구가인 페놀로사가 일본의 야쿠시지(藥師寺) 삼층목탑에 보낸 찬사를 연상케 한다.

"아, 저것은 얼어붙은 한 곡의 소나타다."

대영박물관 일행과 쌍봉사를 갈 때 나는 그 고갯마루에 잠시 차를 세우고 저 '얼어붙은 소나타'를 고요히 감상하게 할 것이다.

유홍준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문화예술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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