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시평

법과 질서에 대한 국가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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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법과 질서는 현 정부에서 매우 중요시 하는 국정운영기조의 하나다. 한 국가가 선진국으로 진입하는데는 법이 제대로 서고 삶에 질서가 바로 잡혀야 한다. 그래서 ‘법이 제대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말은 옳다. ‘나라법 위에 떼법이 있다’고 공공연히 말하던 때가 엊그제 아닌가. 마구 떼를 쓰고, 다중의 힘으로 밀어붙이면 나라법도 필요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지금까지 통했으나 이를 옳다고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법이 무엇인지, 질서가 왜 그렇게 중요한지를 잘 알고 있는 것일까. 법이라고 하면 사람 가두고 형벌로 처벌하는 것쯤으로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법 없이 사는 사람’을 좋은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면서도 법률가가 되고 싶어 하는 자기모순의 이중성을 보이면서 말이다.

법이란 개인들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욕망과 이익을 추구하면서 남들이야 죽든 말든 나만 살면 된다고 하는 것을 없애기 위해 있다.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마구잡이로 권력을 휘두르지 못하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래서 우리 모두 안전한 공동체에서 더불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만든 객관적인 규범을 법이라고 한다.

이러한 법은 누구나 마음대로 하지 못하도록 우리가 합의한 내용을 담아 놓았기에 우리는 이에 맞추어 살면 된다. 그러면 미래를 불안해하지 않아도 법에서 예측하고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미래에 대한 예측가능성은 사람들에게 신뢰를 보장한다. 선진국이 되려면 무엇보다 국민들간에, 그리고 정부와 국민들 사이에 신뢰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서로 믿고 미래를 설계하고 평화롭게 살 수 있다. 공동체에서 신뢰가 보호되고 미래에 대한 예측가능성이 보장되는 삶의 원리를 법치주의라고 한다. 선진국이 되려면 법치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질서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형성하는 일정한 삶의 방식이다. 헌법 제10조에서 말하고 있듯이, 모든 사람이 각자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지고, 서로 공존하며 살 수 있게 만드는 삶의 방식이 질서이다. 이러한 질서는 누가 강제해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더불어 살기 위하여 동의하는 합의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래서 선진국의 법질서는 대화적 질서일 수밖에 없다. 이런 질서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함께 살고 싶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형성한 것이기에 이를 위반할 수 없다. 이를 위반하는 것은 타인의 행복을 파괴하는 것이기에 강제력으로 이를 제어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정부가 존재하고 법원이 필요하다.

사회의 안녕을 보장하는 치안질서도 중요하다. 국민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치안질서를 과거처럼 경찰치안과 동일한 뜻으로 보면 곤란하다. 치안질서는 공동체와 국민의 안전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치안질서는 물론이고 다른 법질서도 안전권 보장의 면에서 새롭게 보아야 한다. 현대 사회는 각종의 위험이 만연한 위험사회다. 이를 해결하는 것은 공동체와 국민의 안전을 실현하는 길이다. 그래서 위험사회에서는 법은 위험을 최소화하는 기제로 필수적이다. 법치주의가 가지는 새로운 의미는 여기에 있다.

우리의 현실을 보면, 사실은 각자 남의 이익을 무시하고 자기 욕망을 극대화하면서 이를 자유라는 이름으로 가장하기도 한다. 이는 거짓이다. 그것이 교육운동이든 파업이든 인터넷상의 표현이든 마찬가지다. 어떤 경우든 법대로 한다는 것은 나의 이익만큼 남의 이익도 존중하는 것을 말하고, 현재 세대만큼 미래 세대도 이 공동체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판단의 기준도 명백해진다.

정부는 어떤 경우에도 국민의 삶에 과도하게 개입하면 안 된다. 인간의 삶이란 기본적으로 자율이 본질인 시장 속에 존재한다. 표현의 시장, 사상의 시장, 양심의 시장, 거래의 시장 등등. 이러한 시장을 정부가 과잉규제하면 안 된다. 시장에서는 누구나 자유로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필요한 규제의 혁파가 필요하다.

이렇듯이, 법과 질서란 누구나 쉽게 동의할 수 있는 삶의 원리이고, 국가작용의 원리이다. 그러나 이를 구체화시키는 작업은 정밀한 설계가 필요하다. 법과 질서를 구호처럼 강조만 할 것이 아니라 미래적 삶을 행복하게 만들 새로운 모습의 법과 질서에 대한 국가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정종섭 서울대교수·헌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