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淨慧화상 중국 선불교 임제종 栢林禪寺 방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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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한.중.일불교교류회의 서울대회가 9일 서울 워커힐 호텔에서 3개국 1천여명의 불교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막돼 12일까지 계속된다.
대회 연사중의 한사람인 중국 선불교 임제종 백림선사(柏林禪寺.허베이성 조현)방장 정혜(淨慧)화상을 만나 중국불교 현황과 전망등을 들어봤다.
▶이은윤기자=반갑습니다.한국불교 선풍(禪風)에 대한 인상은.
▶정혜화상=지난 90년 세계불교도연맹대회때 처음 한국을 방문했고 이번이 두번째입니다.한국불교의 발전상에 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만 너무 빡빡한 일정이라 아직까지 직접 눈으로 확인을 못했습니다.
▶이=중국불교가 개방화 이후 경제성장보다 몇십배나 빠른 속도로 복원.부흥되고 있다는데.
▶혜=그동안의 여러가지 사정으로 단층(斷層)이 많습니다.우선40~50대의 승려들이 별로 없는 인재의 단층이 깊고 옛 전통의 계승에도 단절이 있고.특히 문화혁명 10년의 그림자를 벗어나는데 많은 물질적 부담을 안고 있습니다.한마디 로 춘궁기의 「보릿고개」라고나 할까요.그러나 인민들의 신심만은 열기가 대단합니다. ▶이=화상께서 주석하고 계신 백림선사는 저 유명했던 선장(禪匠) 조주종심선사(778~897)가 선풍을 드날렸던 옛날의 관음원이지 않습니까.우선 조주의 선사상을 한마디로 드러내보이신다면.
▶혜=선지식(善知識) 조주의 선사상은 『차나 한 잔 마시게(喫茶去)』라는 유명한 화두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선사는 참문을하러 온 두 중에게 모두 차나 마시라고 했지요.이는 「실천」을강조한 것입니다.마음을 비우고 자기 할 일을 충실히 하는 요사범부(了事凡夫)의 평상심이 곧 불도(佛道)의 실천이며 절대자유의 열반이라고나 할까요.
▶이=조주의 가풍을 지금 어떻게 부활시키고 있는지.
▶혜=우선 백림사는 선사상의 국제토론장화를 위해 대규모 국제선원을 건립할 계획입니다.동시 6백명을 수용할 수 있는 선당을2003년까지 완공할 예정으로 현재 부지를 확보해 놓았습니다.
▶이=한국 선방에서도 조주선사의 「무(無)」자 화두를 많이 듭니다.중국에서는 어떤지.
▶혜=중국에서도 마찬가집니다.원래 이 화두는 한 중이 『개에도 불성이 있느냐』고 묻자 『개에는 불성이 없다(狗子無佛性)』고 답한데서 비롯됐지요.얼핏 보기엔 무정물까지를 포함한 일체중생이 모두 불성(佛性)을 가졌다는 선가의 기본사상 과 어긋나는역설입니다.그러나 이때의 무는 「유」와 「무」라는 분별을 뛰어넘은 절대 무로서 긍정과 부정이 통합된 것이지요.
따라서 이런 경지에선 「무=유」가 성립되는 묘유(妙有)의 세계가 전개됩니다.
▶이=기왕 조주선사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나만 더 해보지요.『불교의 근본정신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뜰앞의 측백나무(庭前柏樹子)』라고 대답한건 무슨 의미입니까.
▶혜=우주만물에 편재하는 도(道)의 절대평등성과 그 활용을 상징한건데 언설로 설명하긴 어렵습니다.우리 선학 전문용어로는 본체를 따라서 작용을 일으키는 종체기용(從體起用),또는 체용일여라고 하는데….
백림사에는 지금도 조주선사께서 친히 심었던 그 옛날 측백나무가 살아있습니다.
▶이=화상께서는 현대 중국선불교 중흥조인 허운대사(1840~1959)의 법제자인줄로 알고 있는데 앞으로의 중국 선종 발전을 어떻게 전망하시는지.
▶혜=현재는 염불.정토 중심이지만 앞으론 참선 중심이 될 것입니다.그 이유는 새로 입문하는 젊은 승려들이 선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갖고 있고 실제로도 선수행에 전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허운대사께서는 이미 오래전 그 전법상의 법맥이 단절돼버린 위앙종과 운문종의 종풍을 부활시켜 5가7종의 5가중 계속 법맥을 전승해온 임제.조동종에 병립시켜 놓았습니다.다만 아직까지 법안종이 옛 조정(祖庭)도량의 파괴로 부활되지 못했 지요.
▶이=승려를 지망하는 젊은이들이 많습니까.
▶혜=많습니다.모두 받아들이질 못하는 실정입니다.전국에 10개 계단이 설치돼 있는데 각 계단에서 연 3백여명씩을 수계해 총 3천여명이 매년 출가 입문하고 있지요.
▶이=그렇다면 승려 인적자원은 멀지않은 장래에 충원이 되겠군요.현재 도량 복원의 막대한 재정적 부담은 어떻게 해결하는지요. ▶혜=각 사찰이 자신의 능력껏 자체 수입으로 재정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있지요.관광객의 관람료 수입과 국내외 신도의 시주가 사찰재정의 양대 기둥입니다.
▶이=중국불교의 주류는 당나라 이후론 선불교라고 알고 있습니다.지금 현황은 어떤지요.
▶혜=그점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전국 도량의 90%가 선종도량이고 새로 출가하는 불학원 입학생들의 절대 다수도 선승 지향이니까요.중국의 사찰들은 선종과 교종의 구분이 입구 편액에 명시됩니다.대부분의 선찰들은 전통적으로 절이름 뒤에 선사(禪寺)를 넣은 현판을 달고 있고 교종의 경우는 천태산 국청강사처럼강사(講寺)라는 표시를 합니다.그러나 이런 원칙이 절대적인건 아니고 하나의 관행일뿐입니다.
▶이=원래 선종은 백장회해선사(749~814년)의 청규시행이후 농선병행(農禪병行)이 중요한 전통의 하나로 전승돼 왔지요.
신라말 이후의 한국선종도 마찬가지였습니다.현재 중국 선불교는 이 전통을 그대로 지키고 있는지요.
▶혜=선종은 4조 도신(道信)조사 때부터 개산주사(開山住寺)가 시작된후 농사짓고 나무심는등의 노동도 하나의 수행으로 간주,승려들의 공동작무인 보청제도(普請制度)를 확립해 왔습니다.물론 전통화 되기는 백장이후지요.
그러나 지금의 정황은 농선일치를 전통대로 여법하게 실천하기 어려운 내외 여건들이 많습니다.아직 사찰 토지 확보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고 승려수가 노동력을 발휘할만한 인력구조를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채전.차밭.약간의 토지경작등과 같은 운력(運力)을 통해 농선병행의 정신만은 철저히 살리고 있습니다.
▶이=지난 6월 중국 선종사찰 몇군데를 돌아보면서 느낀 점입니다.원래 선종사찰은 법당 중심이고 거창한 대웅전이나 여타 불전을 갖지 않는게 전통인줄로 아는데 실제는 그렇지 않더군요.
▶혜=맞습니다.옛날의 선종에서는 화려하고 웅장한 대웅보전이나미륵전같은 불당을 갖지 않았었지요.그러나 시대의 변천을 따라 변했습니다.지금은 대부분이 대웅전 중심의 사찰구조지요.
그러나 선종의 부흥이 본궤도에 오르면 달라질겁니다.백림선사의복원에서는 불당 규모도 작고 불상도 소박한 석가모니불 하나만 봉안했습니다.그랬더니 신도들은 지금도 자꾸만 크고 화려한 불상을 모시고 싶어해요.
▶이=선불교 중심의 중국 불교는 그 연원은 인도지만 인도 불교와는 전혀 다른 불교의 종교개혁이랄수 있는 중국적 불교라고들하는데 화상께서는 오늘의 중국 불교도 이와 같은 맥락의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보시는지.
▶혜=선종의 경우 중국 고유의 노장사상.인생관등을 통해 인도불교를 재해석한 제2의 불교탄생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물론 선종의 독창성은 한국.일본을 포함하는 동아시아적 전통과 노력의 결집으로 이루어진 열매였지요.
지금은 선종의 독자성이 많이 퇴색한 일면도 없지 않지만 그 뿌리는 여전히 건재한다고 믿습니다.
▶이=화상의 출가역정을 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60년전 3세때 동자出家 ▶혜=3세때 동자 출가했습니다.한 비구니가 양자처럼 키워주었지요.60년전 얘기니까 49년 해방(마오쩌둥정권 수립)전의 일이군요. 허운대사의 뜨거운 가르침과 선농일치의 노동정신은 정말나의 생을 이끌어준 등불이었습니다.원래 우리 선문에서는 제자의법력이 스승보다 월등해야 인가해주는 전통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나는 허운대사의 10분의1도 못되면서 그 법제자가 됐다는 생각을 지금도 지울 수 없습니다.
(정혜화상이 밝히는 자신의 출가 역정은 눈시울을 적시는 이야기들이 많았다.그러나 그는 자신의 실존을 숨김없이 고백하는 무심(無心)한 도인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마치 조개가 입을 벌려 내장을 훤히 드러내 보이듯 「자기」를개방해버렸다.) ▶이=일정도 바쁘고 여로의 피로도 있을텐데 이렇게 시간을 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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