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등의 불은 껐지만 …‘안도 랠리’기대 힘들 듯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6면

“노아웃 만루에 구원투수가 등장했다.”

유진투자증권은 미국 구제금융법안의 의회 통과를 이렇게 빗댔다. 금융시장이 대량 실점 위기에 몰리자 구원투수가 등판했지만 소방수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할지는 미지수란 것이다.

3일 뉴욕 증시는 이런 우려를 그대로 대변했다. 다우지수는 구제금융안이 의회를 통과할 것이라는 기대감에 장 초반 300포인트 넘게 상승했다. 그러나 막상 구제금융안이 의회를 통과하자 급락해 150포인트 넘게 하락한 채 거래를 마쳤다. 실물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국내 증시도 ‘안도 랠리’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많다.


◆불안은 여전=일단 ‘발등의 불’은 껐다. 급락한 증시가 어느 정도 반등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주가가 ‘충분히’ 싸졌다는 것이다. 2008년 예상이익 기준으로 거래소 시장의 주가수익비율(PER)은 10배 수준으로 내려왔다. 주가순자산배율(PBR)도 1.2배다. 1배면 당장 회사를 청산해도 주식 가치만큼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동부증권 지기호 투자전략팀장은 “실적에 비해 지나치게 하락한 주가 수준, 신용경색이 완화될 것이라는 기대감 등을 감안하면 단기적인 상승도 기대해 볼 만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금줄은 여전히 막혀 있다. 3일 3개월짜리 달러를 빌리는 런던 은행간 금리(리보)는 전날보다 0.12%포인트 오른 4.33%까지 급등해 5일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원-달러 환율도 당분간 오름세를 보일 것이라는 게 대부분 전문가들의 견해다. 돈줄이 막힌 탓에 기업들은 이자를 높게 쳐줘야만 하는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유진투자증권 박석현 연구원은 “시장이 안정될 때까지 매수를 뒤로 미룰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물경기 침체 우려=대우증권 이승우 연구원은 “구제금융안 통과 여부에 쏠렸던 시장의 관심이 실물경제로 옮겨가고 있다”며 “실물경제의 침체가 증시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미 신용위기의 근원인 미국을 비롯한 유럽·일본 등 선진국은 물론이고 국내 시장에서도 경기침체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현재 경기 상황을 보여주는 지수(경기동행지수)와 미래 경기 국면을 예고해 주는 지수(경기선행지수) 모두 7개월째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하락했다.

이달 중순부터 이어질 ‘어닝 시즌’도 악재가 될 가능성이 크다. 세계 경기 침체 여파로 기업 실적이 본격적으로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 가치를 평가하는 잣대인 이익 전망치도 연일 낮아지고 있다. 유진투자증권에 따르면 2일 현재 거래소 주요 기업의 영업이익과 순이익 전망치는 한 달 전에 비해 각각 2.1%, 3.8% 낮아졌다. 3개월 전에 비해서는 7.6%, 11.2% 하향 조정됐다.

HMC투자증권 이종우 리서치센터장은 “국내 기업의 실적은 올 2분기에 정점을 찍었던 것 같다”며 “3분기부터는 전 세계 수요 감소와 비용 상승 등으로 실적 악화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증권 김학주 리서치센터장은 “구제금융법안 통과로 단기 반등이 가능할 수 있겠지만 경기침체 우려로 내년 상반기까지 증시는 1320~1540선의 박스권에 갇힐 것”이라고 전망했다.

고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