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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과한국인의삶>2.겉멋과 속멋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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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멋있는 사람」이라는 말 가운데는 「잘 생긴 사람」이나 「착한 사람」 또는 「능력있는 사람」보다는 더 많은 의미가 함축돼있다.비록 겉모습이 잘생겼어도 인품이 졸렬하면 우리는 그에게 「멋있다」는 찬사를 바치지 않는다.비록 학식이 많고 재주가 뛰어나더라도 겉모습이 너무 초라하면 우리는 그를 「멋있는 사람」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한다.보기 좋은 외모와 유덕한 심성을 고루갖춘 사람에게만 우리는 참으로 「멋있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한국인이 일반적으로 「멋있다」는 찬사를 다른 찬사보다 선호한다 사실은 한국인의 가치체계안에서 「멋」이라는 가치가 차지하는 위상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한국인은 전통적으로 멋있는 사람이 돼,멋있는 삶을 살기를 희망하는 성향(性向)이 현저하다. 「멋」이라는 가치는 전통적으로 한국인의 정서와 잘 어울리는한국적 가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멋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일찍이 제기하고 이에 대한 해답을 꾀한 이는 신석초.이희승.조윤제.조지훈님등 우리나라의 국문학자들이다.다소간 차이가 있는 그들의 견해 가운데서 비교적 설득력이 있는 것은 조지훈님의 연구다.
조지훈님에 따르면 「멋」이라는 미감(美感)은 풍류.화려.쾌락.호방.경쾌.율동.초탈의 미(美)에서 느낀다.그리고 매우 정상적이고 규격에 딱 들어맞는 것,빈틈없이 질서정연한 것에서 느끼는 아름다움은 멋이 아니다.멋은 정규(正規)와 정 상(正常)을약간 벗어나서 파격적인 데가 있으면서도 크게는 조화를 잃지 않는 것에서 느끼는 아름다움이다.멋은 풍류(風流) 또는 여유로움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졌다.
앞에서 언급한 국문학자들이 예로 든 멋은 주로 겉모습의 아름다움이다.한국인의 미의식(美意識)에 포착된 외형미(外形美)의 으뜸으로서 멋을 설명했다는 인상이 강하다.그러나 우리에게 멋을느끼게 하는 것은 겉모습의 아름다움만이 아니며 속마음의 아름다움에서 더욱 감격스러운 멋을 느끼는 경우가 흔히 있다.
외형의 멋보다 내심(內心)의 멋이 더욱 값지다는 것을 강조한사람으로 우리는 피천득(皮千得)시인을 알고 있다.피천득 시인에따르면 진정한 멋은 시적 윤리성(詩的倫理性)을 내포한 심성의 아름다움에서 찾아야 한다.그는 시적 윤리성을 지닌 참으로 멋있는 행위의 예를 여럿 들고 있다.테니스 경기에서 심판의 오심으로 한 점 득을 보게 된 선수가 그 다음 순간에 일부러,그러나자연스럽게 실수를 범함으로써 그 부당한 득점을 상쇄한 태도를 그는 『참으로 멋있다』고 찬양했 다.
천금을 주고도 중국 처녀의 정조를 범하지 않고 집으로 곱게 돌려보낸 조선조 역관 홍순언(洪淳彦)도 멋있는 남자의 예로 들었다. 한국의 전통예술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에는 한국적 가치로서의 멋이 도처에 깔려 있다.문외한으로서도 누구나 멋을 느끼게 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전통무용이다.
북춤을 곁들인 승무(僧舞)의 멋스러움에 대해서는 피천득님의 수필 『멋』가운데 멋있는 표현으로 언급된 바 있거니와 그밖에도장구춤과 칼춤등 주로 천민층이 즐겼던 춤사위는 대개 멋 그 자체다. 전통음악 가운데서도 서민층이 즐겼던 각종 민요의 흐느적거림속에서,그리고 타악기가 주류를 이루고 어우러지는 풍물,즉 농악의 흥겨운 장관속에서 우리는 조상들의 일상생활을 가득 채웠던 멋을 발견한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 조상들이 가난속에서도 멋있는 삶을 살았음을 의미한다.우리 조상들로 하여금 멋있는 삶을 살게 한 것은 물질의 풍요가 아니라 낙천적 기질에서 오는 마음의 여유였던 것이다. 가난의 대명사에 해당하는 거지들이 즐겨 불렀던 『장타령』에도 멋과 흥겨움이 가득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깊이 주목해야 할 것이다.
돈만 많으면 호화스러운 집단장과 사치스러운 옷치장을 통해 누구나 멋을 부릴 수 있다.
그러나 가난한 가운데서 멋있는 삶을 갖기 위해서는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하고 심성이 아름다워야 한다.우리 조상들의 서민층이 보여준 멋은 마음의 여유와 심성의 아름다움을 바탕으로 삼았다는 점이 자랑스럽다.사정은 사대부 계층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않다. 양반계급 가운데는 일부 풍요롭게 산 사람들도 있었으나 그들도 대부분은 가난을 면치 못했다.가난한 선비들이 청풍(淸風)과 명월(明月)을 즐기며 멋스러운 삶을 영위한 이야기나 시문(詩文)과 음률(音律)을 나누어가며 친구들끼리 정겹고 멋있는 삶을 가졌던 사례는 우리나라 역사의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다.
멋은 여유를 필요조건으로 삼고 생긴다.멋은 물질의 여유에서 오기도 하고 정신의 여유에서 오기도 한다.다만 물질의 여유에서오는 멋과 정신의 여유에서 오는 멋은 그 범주가 서로 다르다.
옛날 우리 조상들의 삶속에 가꾸어진 멋은 대체로 마음의 여유가 낳은 멋이었다.우리 조상들은 가난속에서도 풍류를 즐기는 마음의 여유를 가졌고,마음의 여유를 토양으로 삼아 멋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웠다.
1945년 해방을 계기로 한국인의 가치관에 크나 큰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미국인의 풍요로운 물질 생활을 목격하게 돼 큰충격을 받았고 그 충격은 곧바로 선망으로 변했다.
***해방후 가치관에 큰 변화 미국인처럼 풍요롭게 사는 것이곧 사람답게 사는 것이고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많은 돈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한국인 대부분의 마음을 사로잡았다.이러한 정서를 재빨리 파악한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은 경제개발을 정책의 첫째 과제로 삼았고 우리나라는 상당한 물질적 풍요를 누리게됐다. 경제개발에 성공한 결과로 돈이 흔해졌고 사치스러운 차림새로 멋을 부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호텔 로비나 백화점 매장은멋있게 차린 사람들로 붐비고 있으며 거리에 나서면 어느 곳에서나 멋쟁이들과 만날 수 있다.
경제적 풍요를 얻은 이후로 우리가 도처에서 흔히 볼 수 있는멋의 사례는 대부분이 외형의 멋이다.
여기서 우리가 묻게 되는 것은 심성의 덕(德)에서 우러나는 내심의 멋도 옛날보다 그 수준이 올라갔느냐는 물음이다.이에 대한 나의 대답은 부정적이다.사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인심은 각박해졌고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마음의 여유를 잃고 자기밖에 모르는 옹졸한 인간상(人間像)을 보여준다.이러한 심성은 결코 멋의바탕이 아니다.
물질의 풍요와 반비례해 심덕(心德)의 빈곤이 찾아왔고 사람들은 마음의 여유와 너그러움을 잃었다.이러한 심성의 변화로 인해겉모습이 멋있는 사람은 도처에 흔하나 속마음이 멋있는 사람은 만나기 어렵게 됐다.
외형의 멋도 그 자체로 바람직한 것임에 틀림이 없다.그러나 속멋의 뒷받침이 없는 겉멋의 가치는 매우 제한적일 뿐 아니라 거기에는 사치와 낭비,허영과 부화(浮華)등 부정적 측면이 따른다. 돈으로 살 수 있는 멋은 경박한 멋이다.삶의 질을 높여주는 진정한 멋은 아름답고 여유로운 심성에서 우러나오는 내심의 멋이다.우리 조상들이 그러했듯이 너그럽고 여유로운 마음을 갖는것이 많은 돈을 갖는 것보다 더욱 중요하다.
김태길 서울대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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