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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쓰는가정문화>8.때리는 아이,때리는 부모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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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아이를 키우자면 걱정거리가 한 둘이 아니다.
밥을 잘 안먹어 걱정,텔레비전을 너무 많이 봐 걱정.아이가 밖에 나가 놀기 시작할 나이라면 요즘은 행여 따돌림 당하지나 않을까,매맞고 오지나 않을까 걱정.
주부 金은수(31.서울송파구잠실동)씨는 얼마전 두 아이의 엄마인 한 친구의 아이자랑을 듣고 기가 막혔다.
자랑의 내용인즉 「우리 아이들은 유치원에서 때리고 오면 때리고 왔지 절대 한대도 맞고 오지는 않는다」는 것.
아들 둘을 키우는 金씨 역시 내 아이가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이겨나가려면 「맞는 아이」보다는 「때리는 아이」가 되는 편이 낫다는 부모들의 이기심을 전연 이해못할 것은 아니었지만 씁쓸한기분을 지울 수는 없었다.
전문가들은 이런 부모들의 심리에서 비뚤어진 이기심 이상의 문제를 읽어낸다.한국가족상담교육연구소 유은희연구원은 『그런 아동을 둔 부모는 「내 아이가 힘이 있구나,경쟁사회를 잘 헤쳐나가고 있구나」할 것이 아니라 「내 아이가 사회적응을 못하고 있구나」하고 문제를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어린아이들이 다른 아이를 때리는 이유란게 주로 나랑 안놀아준다고,내 말 안듣는다고 그러는 만큼「때리는 아이」는 한마디로자기 뜻을 남에게「말」로 설득시키는 능력이 부족한 아이』라는게그의 설명이다.
의사소통 수단으로 말보다 주먹에 의존하는 것은 어른도 마찬가지.특히 가정에서 『말로 해서는 안듣는다』면서 자녀를 때리는 부모의 행동도 같은 양상을 곧잘 드러낸다.
「청소년 대화의 광장」김병석상담부장은 『자녀를 때리는 부모는「때려서라도 가르쳐야 한다」고 말하지만 실제 「너는 이러저러한잘못을 저질렀으니 종아리 세대를 맞는거다」하면서 냉정한 상태로자녀를 때리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다』고 꼬 집는다.
『교육효과보다는 분노를 표출하는 수단으로 자녀를 때리는 경우에도 우리사회는 너그럽게 보아넘기곤 한다』며 그는 사회 일반의폭력 무감증을 비판한다.
지나치다 싶을 만큼 폭력에 대해 관용적인 우리 사회의 태도는이런 가정 분위기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김병석부장은 『때리는 것이 금지돼있는 집에서는 아이들이 결국어떤 문제건 말로 해결할 방법을 모색하게 된다』면서 『자신을 때리는 부모나,어머니를 때리는 아버지를 보고 자란 아들은 「나는 절대로 아버지처럼 하지않겠다」고 마음먹을 수 도 있을테지만그보다 먼저 「갈등해결의 수단으로 폭력을 이용할 수도 있다」는것을 배운다』고 말한다.
「한국여성의 전화」가 올상반기 상담내용을 분석한 결과는 이같은 폭력대물림 현상을 뒷받침한다.분석결과에 따르면 상담을 신청한「매맞는 아내」7백66명에게 「시아버지가 시어머니를 구타한 적이 있습니까」라고 묻자 가부(可否)답변을 한 경 우가 2백61명.그 가운데 「간혹 또는 자주 있었다」는 답변은 60.5%,「없다」는 응답은 11.11%에 그쳤다.
아이들을 때려서 길러야 한다는 식의 태도는 그러나 아직도 팽배해 있어 가정내 불화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맞벌이 주부 朴성미(31)씨는 세살짜리 딸을 두고 남편과 곧잘 다툰다.
어려서 거의 매를 맞아본 적이 없는 朴씨는 자꾸 때리다보면 점점 체벌 정도가 심해지고 딸아이는 그만큼 위축될 것이란 생각에 일절 매에 반대하고 있으나 남편은 『날 봐라,나는 어려서 부모님에게 많이 맞아봤지만 내가 어디 한군데 심리 적으로 잘못된 곳이 있느냐』라며「아이는 버릇없이 키워서는 안된다」고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많은 부모들이 「아이를엄하게 키우는 것=때리는 것,아이를 자유롭게 키우는 것=일절 제재를 가하지 않는 것」이란 양극단의 함정에 빠져있다고 지적한다. 「말」로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 때로는 물리력을 동원하는 것보다 당장 힘들기는 하지만 교육적으로 보다 효과가 있다는 것을 믿고 실천하는 가정문화에 대한 모색이 필요한 때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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