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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남편과 유모가 벌거숭이로 얼려 있을 때였다 한다.
마침 집에 있던 구사장이 대문을 열어주자 사나이는 다짜고짜 딴채쪽으로 달려갔다.
『여보세요,여보세요!』 방금 벌어지고 있을 상황을 짐작한 구사장이 황망히 불렀으나 「오래비」라며 문열어달라던 그는 막무가내였다.난감했다.
잠시 후 속옷만 입은 을희 남편이 그 사나이에게 목덜미를 잡힌 채 끌려 나왔다.
『옷이나 입히고 가요.』 뒤에서 여인이 따라나왔다.그녀는 을희 남편의 양복을 한아름 안고 있었다.
『잔말 말고 따라와!』 사나이는 여인을 향해 호통쳤다.
『나쁜년.뭐 유모짓을 해? 젖을 먹인게 아니라 ×을 먹었군 그래.』 쌍욕을 퍼부어대며 그는 대기시켜놓은 차에 두 남녀를 구겨넣었다.
속옷 바람으로 맨발에 구두를 신고 끌려가는 을희 남편의 몰골이 참담했다.
『죄송합니다.회사에 연락해서 제 차를 가져가라 해주십시오.』그는 차에 오르며 구사장에게 한마디 했다.도와달라는 신호다.
『같이 갑시다.』 구사장은 날쌔게 차에 올랐다.
사나이는 구사장을 밀어내려다 생각을 고쳐먹은 듯했다.
『그래,같이 갑시다.증인이 있으면 더 좋지.』 경찰서에 당도하자 사나이는 길길이 날뛰며 을희 남편의 죄상을 고발했다.유부녀를 유괴하여 능욕했다는 것이다.
사나이는 「오래비」가 아니라 그녀의 남편이었다.
어떻게 집을 알았으며,하필이면 이사가는 전날에 그것도 남녀가알몸으로 얼려 있을때 타이밍 좋게 덮쳤단 말인가.내외가 짜고 한 짓이 아닐까.
을희 남편이 조사받고 있는 사이 구사장은 그 사나이를 방구석으로 데려가 대뜸 넘겨 짚었다.
『얼마 필요한 거요?』 사나이는 뜻밖이란 듯 흘끗 쳐다보다 구사장의 서슬에 눌려 어물거렸다.
『그야…흥정 나름이지.』 『좋아,그럼 흥정합시다.』 사나이가원하는 액수는 엄청났다.으르며 어르며 절반으로 깎아 합의하게 하여 을희의 남편은 풀려났다.수표를 끊어준 것이다.
자초지종 이야기를 구사장으로부터 전해 듣고 어이가 없었다.
-전쟁미망인이라더니.
「전쟁」을 파는 무리는 도처에 있다.을희는 분노로 가슴이 메었다.
글=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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