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생겨 죄송한 친구들 하는 짓은 ‘완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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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보이’시리즈는 착한 자의 편에서 괴물들과 맞서 싸우는 한 괴물의 무용담이다. 난폭하다 싶을 정도로 힘이 무시무시하지만, 어딘가 순진하고 낭만적인 구석이 있는 괴물과 그의 개성파 친구들이 빚어냈던 이상야릇한 매력은 2편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2004년 ‘헬보이’로 독특한 B급 감성을 지닌 블록버스터의 탄생을 알렸던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는 좀 더 넉넉해진 예산(7200만 달러)을 가지고 좀 더 규모 있고 볼거리 풍성한 식탁을 차려냈다.

1편의 주요 캐릭터들이 건재함을 과시한다. 주인공 헬보이(론 펄만)를 비롯해 온몸을 휘감은 불길을 누워서 떡 먹듯 다루는 리즈(셀마 블레어), 악수만 해도 상대방의 의중을 알아차리는 에이브(덕 존스) 등이 그들이다. 이들의 맞수는 요괴 세상의 누아다 왕자(루크 고스). 인간과 요괴가 맺었던 휴전협정을 깨버린 장본인이다. 세상을 지배하겠다는 야심을 지닌 그는 이를 위해 수천 년 동안 잠들어 있던 최강의 군대 골든 아미를 깨우려 한다. 쌍둥이 여동생 누알라 공주(아나 윌턴)는 헬보이 측을 도와 오빠의 무모한 야심을 저지하려 애쓴다.

괴수나 괴물이 잔뜩 등장하는 영화를 ‘비호감’으로 분류하는 이들에게도(심지어 여성 관객들에게도) 이 영화는 무난한 선택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살아있는 괴물 캐릭터들이 전형적인 이야기 뼈대에 독창적인 살을 붙인 덕분이다. 시뻘건 얼굴에 영 못생긴 헬보이는 세상에서 가장 부드럽고 섬세한 피조물의 면모를 내비친다. 고양이를 사랑하고, 맥주캔을 들고 TV 보며 빈둥대길 즐긴다. 덩치는 커다랗지만 소심하고, 그러면서도 여자의 마음을 잘 몰라 애태우기도 한다.

리즈 역시 수시로 불길을 내뿜는 철의 여인이면서도 헬보이의 아이를 임신하자 갈등에 빠진다. 심지어 에이브는 누알라 공주와 정신적 교유를 나누며 가슴 저릿한 순애보를 펼친다. 인간을 위해 일하지만 자신들을 적대시하는 인간들의 반응에 괴로워하는 헬보이와 친구들, 마침내 임신 소식을 알리며 “(아기가 아니라) 아기들”이라면서 두 손가락을 내 보이는 리즈와 뛸 듯이 기뻐하는 헬보이 등 너무나 인간적인 면모를 내보이는 괴물들은 이 영화 최고의 미덕이다. 이들의 발랄하고 귀여운 모습은 남과 다른 능력을 갖고 태어나 갈등하는 ‘엑스맨’이나 아버지를 극복해야 하는 짐을 짊어진 ‘배트맨’의 주인공과는 또 다른, 요즘 영화 속 영웅 캐릭터의 새 트렌드를 보여준다.

판타지 팬이라면 눈여겨볼 대목도 적지 않다. 괴물들의 회합 장소인 트롤 마켓이나 물을 머금으면 순식간에 울창한 숲이 돼 주변을 덮어버리는 나무 괴물 엘리멘탈, 깨어난 골든 아미와 헬보이의 대결 등 델 토로 감독의 상상력은 1편 관객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그는 이 작품을 위해 ‘해리 포터-혼혈왕자’ 연출 제안을 고사했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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