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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부실채권 덫에 걸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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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 중국 최대 경제특구인 상하이 푸동지구 전경. 상하이는 지난해 부동산 가격이 20%잇아 뛰는 등 부동산경기 과열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중국은 '지속 가능하지 않은 투자 거품'의 한 가운데에 있다"(앤디 시에 모건스탠리 애널리스트).중국 전문가인 앤디 시에는 "중국에서 향후 몇개월간 연 40%에 달하는 고정투자의 증가세가 계속되면 속도조절은 곧 경착륙(경기의 급격한 하강)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과열 기미를 보이는 경제성장의 고삐를 죄려는 중국 정책당국의 노력은 지난해부터 이어져왔다. 그런데도 경착륙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잦아들지 않는 것은 중국의 금융 시스템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부실채권에 짓눌린 금융권=중국 통화당국은 경제를 죽이지 않으면서 과열을 막아야 하는 줄타기를 하고 있다. 이처럼 난처한 상황에 빠진 것은 금융시스템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가 금융권의 부실채권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계획경제 시절 중국 정부는 국유기업에 직접 투자했다. 그러다가 시장경제가 도입되면서 금융권이 기업에 대출해 주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이 과정에서 기업의 부채비율은 높아졌고, 개방으로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 노출되면서 수익성은 떨어졌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유기업의 이윤율은 개방 초기인 1981년 21%대에서 97년에는 1.7%로 떨어졌다. 국유기업의 자금줄 노릇을 한 대형 은행들의 동반 부실은 불가피했다.

대우증권은 전체 국유기업의 36%가 적자(2001년 기준)이고, 적자 총액은 689억위안(약 79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지난해 말 현재 중국 4개 국유 상업은행이 갖고 있는 부실채권은 2조4000억위안에 달한다. 이는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20.6%에 해당한다. 이들 금융회사의 전체 대출금 가운데 22%가 원리금을 떼일 위험이 큰 부실채권이다.

◇잠재부실이 더 큰 문제=중국의 부실채권 비율은 공표된 숫자보다 더 높을 공산이 크다. 국유기업들의 잠재적인 부실을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제 신용평가회사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는 중국 금융회사들의 실제 부실채권 규모가 총대출의 40∼50%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일부 국유기업은 과잉 고용·투자로 수익성이 떨어지고 경쟁력을 상실해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연명하는 상태다.

중국 정부가 수익성 낮은 국유기업의 후원자 노릇을 하는 것은 광공업 생산(부가가치 기준)에서 국유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28.4%에 달하기 때문이다. 중국 전체 취업자 가운데 35.4%가 국유기업이 제공하는 일자리 덕분에 먹고산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정부가 취할 수 있는 긴축정책의 강도와 폭은 국유기업과 금융회사의 구조개혁을 어느 정도까지 감당할 수 있느냐에 따라 차이가 날 것으로 전망된다.

◇엇갈리는 전망=LG경제연구원 박래정 연구위원은 “수익성을 도외시하고 대규모 시설투자를 하거나 상환능력보다 시장점유율에 현혹돼 금융대출을 해주는 등 중국의 금융부실 현상은 외환위기 이전 한국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우려가 있다”며 “외국투자나 무역수지에 갑작스러운 충격이 가해지면 투자 거품이 일시에 꺼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블룸버그 통신의 아시아 경제담당 칼럼니스트 윌리엄 페섹도 최근 칼럼에서 중국이 직면한 최대 위험요소로 과잉 투자에 따른 금융 부실화 위험을 지적했다. 그는 “중국 중앙은행은 위험요소를 거론할 때면 장밋빛 안경을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서 “은행의 지급준비율을 높이는 등 지금까지 보여준 노력은 과열경제를 진정시키는 효과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의 기업·금융 구조조정 노력에 대한 낙관론도 많다. 중국은 ▶국유기업 경영진 전문화 ▶국유자산 매각 ▶인수·합병(M&A) 확대 등으로 국유기업을 뜯어고친 뒤 이들 기업을 국내외 증시에 상장할 계획이다. 대우증권은 구조조정으로 국유기업과 금융회사들의 회계와 경영의 투명성이 개선되고 지배구조도 점차 선진화하면 중국 주식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도 높은 긴축은 힘들 듯=국유기업과 금융권의 구조조정은 고용 환경을 일시적으로 악화시켜 소비를 끌어내릴 수 있다. 이 때문에 중국 정부가 긴축 정책을 강하게 펴지는 못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삼성경제연구소 유진석 수석연구원은 “중국 정부가 내수 위축을 우려해 전면적인 긴축정책을 펴지는 못할 것”이라며 “금리 인상 등의 조치에는 신중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중국의 긴축정책은 주로 부문별·지역별 불균형을 조정하는 경제 구조조정을 통해 이뤄질 것이며 내수 진작 기조는 유지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달 30일 리양(李揚) 중국인민은행 통화정책위원은 “금리 인상은 시장의 추측일 뿐”이라며 “금리 인상을 신중하게 검토할 것이며 단기간 내에 금리 인상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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