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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를움직이는사람들>23.한일그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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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지난달 26일 저녁 서울 리베라호텔.한일그룹 김중원(金重源)회장은 지난 5월 인수를 결정하고 실사(實査)중인 우성그룹의 과장급이상 간부 6백여명을 모았다.일종의 격려를 위한 행사였다.金회장은 이 자리에서 인수당하는 우성 임직원들의 불안한 심정을 위로하며 『한일.우성 임직원들의 인화(人和)를 통한 조화로운 경영으로 2005년에는 명실공히 10대그룹 안으로 도약해 보자』고 당부했다.
그는 술병을 들고 행사장을 돌며 참석자들에게 술잔을 권했다.
이날 행사는 부드러운 가운데 진행됐지만 양측 임직원들뿐 아니라 金회장 자신에게도 의미있는 모임이었다.
10년전인 85년8월.金회장은 당시 국제상사등 국제그룹에서 인수한 회사 임직원들을 모아 놓고 비슷한 단합행사를 가진 적이있었다. 당시 재계순위 10위권인 한일그룹이 7위권의 국제그룹을 인수한 것은 하나의 사건이었다.金회장은 국제그룹 인수 10여년만에 다시 우성 인수를 통해 21세기의 새 청사진을 실천에옮기고 있는 것이다.
한일그룹은 金회장의 아버지인 고(故) 김한수(金翰壽)창업주가56년 그룹 모회사인 경남모직을 설립한뒤 60~70년대 섬유경기 호황을 타고 승승장구를 거듭했다.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재계 10위권 그룹에 속했다.金회장은 82년 부 친 김한수 창업자의 별세로 그룹 경영권을 승계했다.
그러나 85년의 국제 인수가 결과적으로 사세(社勢)를 기울게하는 아이러니를 낳았다.신발산업의 급속한 사양화로 신발업체였던국제상사등 피인수업체들의 경영상태가 계속 나빠져 한일의 성장에오히려 부담이 됐던 것이다.자연히 한일의 재 계 순위도 계속 떨어져 작년에는 27위에 머물렀다.
그러나 한일은 우성 인수로 재계 14위권(자산기준)으로 다시뛰어 오르게 되는 전기를 맞고 있다.
우성 인수는 기획단계부터 추진방법까지 거의 金회장이 진두지휘한 것으로 전해진다.평소 섬유중심의 사업구도에서 벗어나 그룹도약의 계기를 찾던 金회장은 올초 우성 부도소식이 전해지자 인수의사를 굳혔다.건설업 진출을 위해 ■원건설이 한보 로 갈 때도관심을 기울였던 그였다.
金회장은 그룹 재무담당.기획담당 임원들과 실무 부.과장들로 된 특별팀 구성을 지시하고 인수업무를 직접 챙겼다.인수의사를 공식 표명한 5월부터는 金회장 자신이 여기저기를 직접 뛰었고 해외 출장중에도 사업진척을 독려했다는 후문이다.결 국 은행단등과의 다각교섭 끝에 한일의 공격적 기업인수합병(M&A)에 성공했다. 金회장은 국제 인수후의 사업부진 원인을 사업구조 조정실패와 능력있는 전문경영인 부족으로 파악하고 이번의 우성 인수후에는 과거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세운 것으로알려진다.
섬유.신발등 경공업으로 커온 한일을 우성 인수를 계기로 2000년대에 맞는 새로운 사업구조로 개편하겠다는 뜻이다.신발.섬유사업은 재정비하고 전자.건설.생명공학.유통부문은 21세기 한일을 떠받치도록 새로 키우겠다는 포부.2000년에 가서 우성을포함해 약 10조원의 매출로 재계 10위권 도전을 꿈꾸고 있다. 金회장은 40대 후반(48)의 비교적 젊은 2세 경영인이지만 79년 주력 한일합섬 사장을 맡을 때부터 사실상 17년째그룹경영을 이끌어 왔다.그는 82년 선친인 김한수 창업주가 돌아간 후에도 『젊은 사람이 너무 높은 자리에 오르면 세상 이목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5년간 회장 취임을 극구 고사했다.우리나이로 40세가 되던 87년에야 회장직에 앉을 정도로 신중한면이 있다.金회장의 그같은 성향은 연공서열 중시.공채출신 중용등과 같은 인사특징으로도 연결된다는 평가다.
***5년간 회장취임 고사 격의없고 소탈.검소한 편이라는 金회장은 경영연륜이 더해가면서 인화와 조화를 강조한다.그의 경영스타일은 자신이 주창한 「오케스트라 경영론」으로 대변된다.기업은 오케스트라와 같아 모든 부문이 절도있게 제기능을 발휘해 조화를 이룰 때만 최적(最適)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생각이다.그 자신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역할을 맡아 각 부문의 조화를이끌어 내는데 주력하겠다는 것이다.
조화를 중시하는 경영을 펼치다 보니 자연히 계열사 사장들에게많은 권한을 주고 있다.그러나 그룹의 진로와 관계되는 중대 사안은 자신이 직접 진두지휘한다.우성 인수와 전자및 생명공학사업등은 金회장이 직접 아이디어를 내고 밀어붙인 사 업이다.이 경우에도 사장단이나 기획실등을 통해 폭넓은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한일의 최고 의사결정기구는 매월 셋째주 화요일에 열리는 그룹 사장단회의.金회장 주재로 열리는 이 회의에는 11명의 그룹최고경영자들이 참석해 그룹의 주요 경영현안이나 투자전략등을 논의.결정하고 계열사의 공동사업을 조율한다.우성 인 수가 매듭되면 회의 참석자수도 약 2배로 늘 것으로 보고 있다.가족적 분위기를 좋아하는 金회장은 자유토론 형식으로 회의를 이끌어 간다고 한다.
한일의 최고경영진은 공채출신의 내부인사들이 대부분이다.
11명의 사장급이상 최고경영자중 이결(李潔)국제상사 사장.마동성(馬東星)국제상사 전자부문 사장.최인수(崔仁洙)신남개발 사장등 3명만 외부영입일뿐 그외에는 모두 한일합섬에서 출발했다.
한일 최고경영진의 또 한가지 특색은 경남고 출신들이 많다는 점이다. ***경남高 출신이 다수 金회장 자신이 경남고를 나왔으며 김정재(金貞才)그룹부회장등 6명이 경남고를 졸업했다.
그룹측은 『연고지가 마산지역이어서 창업초기부터 경남출신 사원들이 많이 입사했기 때문이지 작고한 창업주(김한수 회장)나 현재 회장이 경남지역 고교출신 인사들을 특별히 선호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한다.
김정재 그룹부회장은 金회장의 경남고 7년 선배로 金회장이 없을때 사장단회의를 주재하고 회장의 대내외 업무를 최측근에서 보필한다. 65년 한일합섬에 입사해 26년만인 91년 그룹회장실에서 사장이 됐고 한일레저개발 대표를 잠시 지낸 것을 제외하곤한일합섬에서 기획및 관리업무등을 담당해 왔다.포용력뿐 아니라 정이 많다는 평.
변철규(卞哲圭)국제상사 부회장은 86년 동서석유화학 사장을 시작으로 10년동안 최고경영층에 남아 있는 그룹내 최장수 전문경영인이자 유일한 창업세대 경영자다.현재는 사장단회의나 경영에는 직접 참여하지 않고 金회장등에게 그룹경영 전반 을 조언하고있다.국제상사 사장시절 신발업체인 국제상사에 전자부문을 신설하는등 과감한 사업 다각화를 추진한 기획통이기도 하다.
김용구(金鎔九)한일합섬 사장은 관리와 영업능력을 겸비한 金회장의 핵심 참모.한일입사 30년이 된 경영자로 89년부터 3년여동안 적자인 국제상사의 경영정상화에 노력했다.94년말 주력기업 한일합섬의 사장이 됐다.
지난 연말 조직경량화를 위해 그룹기획조정실을 없앤 한일그룹에서 실질적인 기획조정실장 역할을 맡고 있다.한일의 최대현안인 우성 인수 실무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다.
국제상사 이결 사장은 홍보 출신 최고경영자다.작년말 비자금 사건때 그룹의 이미지 실추를 막는데 큰 공을 세운 것이 인정돼전무승진 1년만인 올초 주력 계열사의 하나인 국제상사 사장에 발탁됐다.
활달한 성격에 마당발로 사회 각계에 인맥을 구축하고 있다.
이밖에 국제상사 전자부문을 맡고 있는 전자통신연구소출신 마동성 사장,정통엔지니어 출신인 동서석유화학 조상진(趙尙鎭)사장,영업통인 진해화학 한진출(韓振出)사장등도 한일의 촉망받는 전문경영인들이다.
***김용구사장 핵심참모 한일에는 회장의 친인척 경영자들이 전혀 없다.金회장은 지난해 4월 경남모직.부국증권등 계열 4사의 경영권을 김중건(金重建)씨등 세명의 친동생들에게 넘겨줌으로써 친인척들을 그룹경영에서 완전히 배제했다.
金회장은 부친이 작고한 이후 이복형제들과 상속 문제등을 놓고소송을 벌이는등 갈등을 빚었다.
그러나 최근 이복동생들이 소(訴)를 취하함으로써 형제간의 그같은 문제는 일단락됐다.
한일은 최근 인수한 우성의 실사를 잘 마무리하고 경영을 조기에 정상화하는 것을 최대현안으로 삼고 있다.우성 정상화에 필요한 자금조달과 전문경영인 확보등도 풀어야 하고 이제 막 진출단계에 있는 전자.생명공학.유통등의 사업활성화도 간 단치 않은 과제다. 우성을 인수한 한일의 21세기 도전작업은 지금 실험대에 올라가 있는 셈이다.
재계는 85년 국제인수에서 얻은 교훈을 이번에 한일이 얼마나잘 살려낼지 주목하고 있다.

<다음은 삼미그룹편> 임봉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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