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경희대NGO대학원·본지 공동기획]21세기 대안의 삶을 찾아서② 일본 야마기시 마을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0호 31면

1 과수원에서 실습 중인 대안고등학교 여학생들. 도요사토 실현지에선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대안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억제하지 않는 한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난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 하지만 과연 무소유의 삶이 가능할까.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 살아도 인간은 행복해질 수 있을까.

私有의 집착 끊고 나니 모두가 부모형제인 義가족

그것이 가능하다면 현실적인 삶의 모습은 어떠한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하며 지난 6월 일본행 비행기에 올랐다.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고서는 진정한 행복은 없다는 믿음 아래 친환경 농업과 무소유를 실천함으로써 행복한 사회를 개척해 보려는 사람들이 사는 곳, 바로 야마기시즘 실현지를 찾아서였다.

일본 나고야에서 기차로 1시간, 이어 마중 나온 국제교류 담당자 가타야마 히로코(片山廣子)의 차를 타고 20분 정도 걸려 미에(三重)현의 한 마을에 도착했다. 입구에 ‘도요사토(豊里) 실현지(實顯地)’라는 탑이 서 있긴 했지만 마을 한복판으로 2차로 도로가 지나고 있는 등 일본의 여느 시골 마을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야마기시회(會)는 1950년대 야마기시 미요조(山岸巳代藏·1901~61)라는 사람이 개발한 친환경 양계와 농사법이 전후 일본 대중 사이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면서 잉태되었다. 야마기시가 꿈꾸어온 이상사회의 철학에 공감한 이들은 53년 “자연과 인위, 즉 천지인(天地人)의 조화를 도모하여, 풍부한 물자와 건강과 친애의 정으로 가득 찬, 안정되고 쾌적한 사회를 인류에 도입하자”는 취지에 따라 야마기시회를 발족했다.

2 마을 사람들이 재배한 유기농산물은 농장 직판점에서 일반인에게 판매된다. 3 목장의 소들도 철저한 순환농법에 의해 만들어진 유기농 사료를 먹고 자란다. 4 마을에서 종종 열리는 다도 모임에는 야마기시즘을 체험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찾아온 외국인도 스스럼없이 참가한다.

야마기시즘은 처음부터 무소유의 삶을 지향하며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구성원이 야마기시의 농법을 배우고 논의를 거치는 과정에서 무소유를 통한 행복한 삶을 추구하게 되었고, 그런 이상과 가치를 구현해 보고자 58년 미에현 가스가야마(春日山)에 첫 실현지를 세웠다. 그 후 일본 내 30여 지역과 해외 각국에도 실현지가 생겼다. 69년에 설립된 도요사토 실현지는 현재 본부 격이다.

호텔 체크인과 비슷한 과정을 거쳐 숙소에 여장을 풀자마자 가타야마가 안내하는 일정에 따라 채소밭과 과수원·양계장·목장, 그리고 퇴비 생산지 및 자동차 수리소, 농산물 배송센터 등을 차례로 돌아보았다. 마을 규모는 제법 큰데 사람은 별로 없어 조금 한산해 보였다. 주민은 520여 명에 달한다고 한다. 무소유의 삶을 산다고 하는 그들의 생활환경이 일반인과 조금도 다름없어 보이는 것도 뜻밖이었다.

그들은 개인, 혹은 가족 단위로 각각의 주거 공간을 부여받고, 독립적인 가정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더구나 그 수준이 빈곤하거나 청빈해 보일 정도도 아니었다. TV와 컴퓨터, 생활에 필요한 가구와 물품 등은 모두 있는 것 같았다. 인터넷도 물론 이용 가능했다. 무소유의 삶을 기치로 내세우고 있는 곳이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마을 사람들은 아침을 제외하고 점심과 저녁 식사는 공동 식당을 이용한다. 거의 모든 식재료는 자체 생산된 것으로, 음식의 맛과 질이 매우 뛰어났다. 필요에 따라 과일이나 음식을 집으로 싸 갈 수도 있었다. 또 공동 세탁시설이 운영되고 있다. 세탁물 수거함에 자신의 옷을 넣어 두었다가 나중에 우편물 수거하듯 각자의 의류 보관함에서 찾아가면 된다. 마을 안엔 공동 목욕탕, 주유소 등도 있었다.

주민은 모두 이전의 직업이 무엇이었든 간에 실현지에서는 각자의 재능과 관심사에 따라 양계장이나 과수원·식당·세탁실 등에서 자신에게 가장 알맞는 일을 찾아 하도록 돼 있었다. 덕분에 개인적인 가사 부담은 전혀 없었다.

교육문제도 공동체가 맡아준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일종의 대안학교가 운영되고 있는데, 공교육과 달리 취미와 운동을 강조하고 때론 농업 현장에 투입되어 일하는 것이 필수다. 이곳 학교에 자녀들을 보냈다가 그것을 계기로 부모들이 실현지에 들어오게 된 경우도 적지 않다고 했다.

대표를 만나 보려고 했으나 대표는 없다고 했다. 대신 농사조합법인 산업사무소에서 일하는 나루세 유키시게(成瀨行茂)라는 이에게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50대 중후반쯤 돼 보이는 그는 금융회사를 다니다가 가족과 함께 이 마을에 들어왔다고 한다. 야마기시회에 가입하려면 먼저 락쿠엔무라(樂園村)라는 프로그램과 특강, 연찬(硏鑽)학교 등을 통해 야마기시즘을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전 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6개월간 수습생활을 한 뒤 전체 연찬회에서 회원 가입이 최종 결정된다.

연찬회란 회원들이 끝장 토론을 통해 문제의 해결책을 모색하는 장치다. 이런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부적응자는 상대적으로 적다고 했다. 이곳 사람들의 재산은 법적으로 공동 소유로 되어 있지만 공동 소유로 여기지 않는다고 했다. 소유 개념 없이 필요가 생기면 그에 따라 사용하는 것이라는 얘기였다.

또 구성원은 서로를 ‘가족’으로 부른다. 그 누구도 다른 이에게 명령하지 않는 민주적 대가족 제도라 할 수 있다. 이곳에서 발생하는 문제나 공동으로 결정해야 하는 일은 부서별, 혹은 전체 연찬회를 통하도록 돼 있었다. 마을에 도착한 이튿날 오전 식당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의 연찬회에 참관해 보았는데, 바로 전날 저녁에 제공됐던 닭고기의 맛과 크기는 적당했는지, 그릇이나 음식 배치는 괜찮았는지 등 시시콜콜한 문제까지 활발히 의견을 나누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짧은 일정 때문에 몇 가지 의문은 미처 풀지 못한 채 돌아서야 했다. 과연 혈연 가족과 같은 끈끈한 정을 이상과 가치로 맺어진 ‘의(義)가족’들 사이에서도 느낄 수 있을 것인가, 또 공동체의 기준을 넘어서는 개인적 욕망은 어떻게 제어할 수 있을 것인가….

이곳이 경쟁적 소유욕으로 인해 비인간화되는 현대사회에 하나의 대안의 삶을 제시해 준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였다. 특히 이상사회를 규정하고 정해진 방식이나 틀만을 통해 조직을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문제를 구성원 스스로의 참여를 통해 끊임없이 연찬하며 해결을 모색해 간다는 점은 이 마을이 생명력을 갖고 지속하게 만드는 힘이 아닐까 생각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