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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용돈 5만원 빼고는 마을회의에서 ‘씀씀이’ 결정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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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호 31면

국내에도 야마기시 철학을 따르는 공동체가 있다. 경기도 화성시 구문천리의 산안(山岸) 마을이다. 마을 이름 자체가 야마기시(山岸) 한자어의 한국 발음이다. 화성시 향남제약공단이 끝나는 지점에서 언덕을 따라 난 오솔길을 2㎞가량 달리면 조그마한 마을 표지판이 나타난다. 16만5000㎡(약 5만 평) 규모의 마을 부지에 닭을 키우는 계사(鷄舍) 18개 동과 숙소·창고 건물 등이 자리잡고 있다.

국내 ‘야마기시 공동체’ 화성 산안 마을

이곳에 사는 사람은 모두 8가족 32명. 이 중 미성년자가 초등학생 9명 등 15명이나 있다. 취재진이 찾은 18일에는 인도계와 베트남계 미국인 청년 두 사람, 일본인 부부 등 5명의 외국인이 한국의 무소유 공동체를 경험하기 위해 머물고 있었다.

마을의 소득원은 세계 약 40개 야마기시 공동체와 마찬가지로 양계다. 햇볕 잘 들고 넓은 친환경 계사에서 3만 마리의 닭을 키우고 있다. 주된 매출은 계란이다. 암탉들이 낳는 하루 평균 1만5000개의 ‘방사 유정란’을 시중에 내다 판다. 항생제나 성장 촉진제 등 인공약품을 전혀 쓰지 않기 때문에 다소 비싼 가격인 개당 350원 정도에 팔고 있지만,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다. 오이·배추·감자·고추·옥수수 등 채소 농사도 자체 소비를 위해 짓고 있다. 물론 모두 유기농이다.

계란을 팔아 번 돈은 무소유 정신에 따라 모두 마을 전체의 수입으로 들어간다. 대신 마을 주민의 모든 의식주를 공동체에서 해결한다. 다만 한 사람당 한 달에 5만원의 ‘용돈’이 주어진다. 이 돈으로 책을 사거나 외식을 즐길 수 있다. 하지만 5만원이 개인이 쓸 수 있는 한도는 아니다. 필요할 경우 ‘연찬회’라 부르는 마을 회의를 거쳐 돈을 내준다. 마치 주민 전체가 한가족이 돼 움직이는 느낌이다.

산안 마을에서는 아이들도 공동으로 키운다. 어릴 때는 친부모와 함께 살지만, 초등학교 2학년이 되면 부모와 떨어져 별도의 옆 건물에서 또래들과 함께 생활한다. 이 때문에 아이들은 모든 어른들을 부모처럼 여기며 자란다. 단 친부모는 그냥 ‘엄마’ ‘아빠’로, 다른 어른은 친구들의 이름을 붙여 ‘○○아빠’ ‘○○엄마’라고 부른다. 학교 교육은 일반인과 똑같이 인근 초·중·고에서 받는다.

숙소 뒤에는 주민 전체가 사용하는 넓은 ‘거실’과 ‘세탁실’ ‘옷방’이 있다. 생필품들을 모아 두는 구멍가게 모양의 창고도 있어 필요할 경우 성인이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쓸 수 있다. 돈을 내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없다. 일은 적성과 능력에 따라 주어진다. 주방을 맡은 사람, 세탁실을 맡은 사람, 아이들 생활 지도를 맡은 사람, 농장 일을 맡은 사람 등 전문화·분업화됐다.

공동소유만 있을 뿐 개인소유는 없는 이 마을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일본 야마기시즘의 영향을 받아 1984년 생겨난 이 마을에 지금까지 들어왔다 나간 식구는 10가구에 이른다. 마을 창립 당시 참여했던 6가구 중 지금까지 남아 있는 가구는 3가구다. 지금 있는 8가구는 거주 경력이 최소 10년을 넘어선다.

마을 안내를 해준 윤성열(65)씨는 “도중에 나간 사람들은 대부분 무소유의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이들”이라면서 “이제 마을에 체계가 잡히면서 주민들이 자부심을 갖고 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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