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질 극복 올림픽 사이클서 은메달 32세 佛여인 인간승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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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29일 새벽(한국시간)사이클 여자개인추발 결승이 벌어진 애틀랜타 스톤 마운틴 벨로드롬.흔히 결승경기에선 승자에게 관심의 초점이 맞춰지게 마련이지만 이날 보도진에 둘러싸인 선수는 은메달리스트인 마리옹 클리녜(32.프랑스).그녀가 간 질이라는 병마와 차별대우를 극복한 인간승리를 연출해냈기 때문이었다.
『비록 은메달에 그쳤지만 결코 섭섭하지 않아요.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것으로 만족합니다.』 12년 동안 간질에 시달려온 그녀는 자신을 둘러싼 각국 취재진에 덤덤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간질을 앓고 있는 세계 모든 어린이들에게 꿈과 용기를 잃지말라고 말하고 싶어요.간질은 결코 병이 아니라는 것을….』 미국 일리노이주 하이드파크에 살던 프랑스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클리녜가 자신이 간질환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20세 때인지난 84년.
시도 때도 없이 몸이 뒤틀리며 땅바닥에 쓰러져 고통을 호소하던 자신의 모습이 죽도록 싫어 삶을 포기할까도 여러차례 생각했었다. 간질환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운전면허증을 박탈당했으나그것은 새로운 인생의 출발점이 됐다.
자전거로 출퇴근하면서 차츰 재미를 느끼게됐고 사이클선수로까지나서게 된 것.
그후 간질 진정제를 복용하면서 맹훈을 거듭한 끝에 클리녜는 5년뒤 미국 사이클선수권대회에 출전해 여자 50㎞ 도로경기에서당당히 우승했다.
이중국적을 갖고 있던 그녀는 이를 계기로 90년 세계선수권대회에 미국대표로 출전하길 희망했으나 거부당하자 국적을 아예 프랑스로 바꿨다.『당시 미국사이클연맹에서는 나의 병을 백안시하는분위기가 역력했던 것 같아요.인종차별이란 느낌도 강했구요.』 이후 프랑스 대표 자격을 얻은 그녀는 91년 세계선수권에서 단체 추발 우승을 이끈데 이어 94년세계선수권에서는 개인추발까지휩쓰는 기염을 토했다.
신경안정제를 매일 6알씩 먹어가며 투혼을 불사른 끝에 결국 그녀는 올림픽에서 정상 못지않은 2위를 차지한 것이다.
한편 이번 올림픽에는 클리녜 외에도 이탈리아 양궁 대표인 파올라 판타토(38.여)가 지체장애자로는 유일하게 출전해 눈길을끌고 있다.
하반신마비로 휠체어를 탄 채 경기에 나서고 있는 그녀가 29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양궁에서 얼마나 선전할지 관심거리다.
정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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