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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준비된 투자…어려울 때 힘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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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국내 기업들이 원자재가 상승과 환율 하락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삼성전자.현대차 등 내로라 하는 기업들도 환율이 떨어져 이익 규모가 줄고 있다. 그러나 이런 위기를 극복하려는 기업들의 노력도 치열하다. 고유가 파고(에쓰오일)와 원자재가 급등(삼성중공업)을 이기려는 산업 현장 두 곳을 찾아갔다.

울산시 온산읍 70만 평에 들어선 에쓰오일 정유공장. 정유처리 파이프라인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이 공장의 왼쪽에 굴뚝이 여러개 솟아있다. 바로 이 굴뚝이 분해 탈황장치(BCC)다. 이곳에 다가가자 유황 냄새가 살짝 코를 찌른다. 그러나 하성기(52) 공장장은 황 냄새가 싫지 않다. 22일 공장에서 만난 그는 "10년 미래를 내다본 분해 탈황시설 선투자 덕분에 에쓰오일은 지난해 처음으로 1조원의 영업이익을 냈다"고 설명했다.

이 회사는 정유사 중 매출 대비 영업이익률이 가장 높다. 이는 탈황설비 덕이다. 배럴당 가격이 휘발유의 절반 정도(30달러)인 벙커C유를 50달러가 넘는 고부가가치의 경질유로 분해해 수출한다. 원유를 정제하면 벙커C유가 절반 정도 나온다. 주로 발전.선박용 기름으로 쓰이지만 공해 배출 물질이 많아 갈수록 수요가 줄고 있다. 가격도 원유보다 낮아 그대로 팔면 손해다.

홍승표 분해공정부 과장은 "에쓰오일은 국내 정유사 중 유일하게 원유 정제과정에서 나오는 벙커C유를 100% 탈황 처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에쓰오일은 지난해 이 시설에서 나온 석유류 제품을 중국.일본 등지에 수출해 55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물론 회사 이익의 60%가 이 설비에서 나왔다. 탈황설비는 땅에서 석유를 뽑아내는 지상 유전인 셈이다.

대외업무팀 조형제 부장은 "이런 분해 시설이 없었다면 에쓰오일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3000억원으로 평범한 실적을 거뒀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 회사는 1991년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 석유회사인 아람코에 지분 35%를 매각해 받은 자금으로 탈황설비 투자에 나섰다. 당시 김선동 사장(현 회장)은 공해물질이 많은 벙커C유의 수요가 줄 것으로 예측해 10년 넘게 21억 달러를 들여 2002년 완공했다. 미래를 내다본 적기 투자가 고유가 시대의 효자역할을 한 것이다.

울산=김태진 기자

효율 2배 로봇용접공

삼성중공업, 자동화 설비가 '효자'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이곳에서의 LNG선박 내부용접은 로봇의 몫이다. 거미처럼 생긴 일명 스파이더 로봇이 긴 팔다리를 뻗어 배의 천장과 벽면을 돌아다니며 불꽃을 튀긴다. 용접 22년 경력의 유현근(47) 반장이 '로봇 용접공'을 감독한다.

지난 21일 그는 "로봇을 용접현장에 투입한 후 작업 속도가 두 배 이상 빨라졌다"고 말했다. 로봇을 투입하기 전까지는 2명이 한 조를 이뤄 용접을 했다. 한 사람만으로는 무거운 용접 발판을 옮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봇은 그런 발판이 필요 없다. 쉬지 않고 80m가량을 용접한다. 4명이 하루에 하던 용접일을 로봇 한대가 해치우는 것이다. 불량률도 훨씬 낮아졌다. 52㎞ 용접에 결함 부분은 10㎜ 이내로 이전(27㎜)의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벌레처럼 생긴 로봇(블라스팅 로봇)은 선박 외부의 용접부위를 평평하게 갈아낸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사람이 직접 선체에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하던 일이다. 지난달 설치된 파이프 검사 로봇은 2~3개월씩 걸리던 파이프 내부를 하루 만에 청소한다.

삼성중공업은 올해 초 스파이더 로봇을 개발해 14대를 현장에 투입했고 블라스팅 로봇 5대도 활약 중이다. 이외에도 철판 절단 로봇 등 20개 자동화 설비를 운영하고 있다. 삼성중공업이 로봇 개발에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은 원가 절감과 생산성 향상을 위해서다. 2003년 말 t당 40만원이었던 후판(조선용 철강재) 값이 t당 64만5000원으로 두 배 가까이 올랐고 인건비도 늘어 이 회사의 경영에 부담이 되고 있다. 그래서 삼성중공업은 내년까지 30건의 자동화 설비를 더 개발할 예정이다. 예정대로 되면 공정 자동화율이 61%에서 65%로 높아져 세계 자동화 설비율 1위인 일본 미쓰비시(61%)를 제칠 수 있다. 선박 건조에 필요한 시간도 연 60만 시간 이상 아낀다. 삼성중공업 측은 "로봇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면 원자재와 인건비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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