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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작 & 상영작] 하늘에 떠있는 신비의 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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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면

천공의 성 라퓨타 ★★★★ (만점 ★ 5개)
감독 : 미야자키 하야오
장르 : 애니메이션
홈페이지 : (htp://laputa.daiwonmovie.com)
등급 : 전체
20자평 : 기계문명과 생명의 공존을 꿈꾸는 눈부신 팬터지.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중 단 한편을 꼽으라면 단연 국내에서도 100만 관객을 동원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다. 뒤늦게 소개되는 그의 이전 작품 가운데 다시 한편을 꼽으라면 30일 개봉하는 '천공의 성 라퓨타'(1986년)를 추천한다. 미야자키가 자신의 회사 스튜디오 지브리를 차린 뒤 처음 내놓은 이 작품은 그가 일본적인 것에 눈을 돌리기 이전의 세계를 강력하고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에는 미야자키 세계의 키워드, 즉 청순한 외모와 달리 강인한 소녀 주인공, 전근대적인 기계장치를 타고 하늘과 땅을 누비는 모험 액션, 문명 비판과 자연친화적인 사상 등이 빠짐없이 들어 있다. 직전 작품인 '바람계곡의 나우시카'(84년)에 비해 쾌활한 유머가 강화된 것도 장점이다.

혼자서 비극적 운명을 온전히 책임지려는 소녀(시타)와 낙천적인 기질로 시타를 돕는 소년(파즈)의 콤비는 TV 시절 만든 '미래소년 코난'의 라나와 코난을 연상시킨다. 시타를 쫓다가 결국 같은 편이 되는 할머니 해적과 해적선 기관실에서 일하는 할아버지의 얼굴에서 훗날'…행방불명'에 등장하는 온천장 주인 유바바 할머니와 거미다리 할아버지의 원형을 찾아보는 것 역시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이런 연관은 그저 잔재미일 뿐 이를 전혀 모른다 해도 '…라퓨타'는 그 자체로 충분히 재미있고 감동적이다.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에서 따온 '라퓨타'는 하늘에 떠 있는 전설의 섬이다. 이야기는 아버지가 남긴 사진을 근거로 라퓨타의 존재를 굳게 믿는 소년 파즈 앞에 해적에게 쫓기던 소녀 시타가 문자 그대로 하늘에서 뚝 떨어지며 시작된다. 시타가 이런 신비한 능력을 가진 것은 라퓨타를 건설한 왕족의 후예이기 때문. 파즈와 시타는 라퓨타의 비밀을 탐내는 군인들과 쫓고 쫓기면서 신비의 섬에 다가간다.

이들이 라퓨타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전투용으로 만들어진 거대 로봇이 꽃과 새들을 돌보며 혼자 살아가는 모습은 기계문명과 생명의 공존을 꿈꾸는 미야자키의 이상향을 단적으로 웅변한다. 인류의 미래를 암흑 속에 몰아넣으려는 탐욕스러운 악당과 마주해 시타가 "여기가 우리 둘의 무덤"이라고 다부지게 내뱉을 때는 소녀에게 죽음을 각오하도록 만든 감독의 진심이 전율을 일으킨다. 각종 영화음악으로 국내에도 적잖은 팬을 거느린 히사이시 조의 음악은 푸른 하늘을 무대로 한 소년과 소녀의 모험에 긴박감과 여유를 적절히 더해준다. 감독이 진짜로 빼어난 점은 음악이 흘러나오는 순간뿐 아니라 음악과 잡음 하나 없는 정적의 순간 역시 능수능란하게 활용한다는 것이다. 이 작품을 복제판 비디오로 이미 본 관객이라도, 시설 좋은 영화관을 다시 찾을 만하다. 전체관람가.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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